[진료실 풍경] 8월의 독감

입력 2023-08-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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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난다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것은 과잉진료다. 열이 나는데도 검사를 안 하는 것은 게으른 진료다. 요즘 나는 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단순 열 감기, 수족구병, 코로나, 온열질환, 여기에 더해 독감까지, 많은 어린이들이 고열을 주증상으로 진료를 받으러 온다.

사실 6월부터 시작해 7, 8월은 환자가 많지 않아 소아청소년과는 비수기, 환자가 없는 철이다. 달리 말하면 이때를 이용해 밀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콘서트를 보러 가는 등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핸 예외다. 쉴 틈이 없다. 수족구병이야 여름에 유행하는 병이니 그렇다 치고, 온열 질환도 더우면 올 수 있으니 넘어가고, 코로나도 최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최고로 더운 8월에 독감 환자가 꾸준하다는 거다. 독감검사 키트는 가을에 미리 사서 겨울에서부터 봄이 되기 전까지 쓰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더 이상 쓸 일이 없어 반품하거나 폐기를 한다. 올해는 8월에도 검사키트를 계속 사고 있다.

에이 설마 독감이겠어? 하다 뒤늦게 검사를 하고 독감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체 왜 이럴까? 추울 때 유행하다가 온도가 올라가면 독성을 잃는 독감바이러스가 더위에 적응할 수 있게 변이라도 일으킨 걸까? 저출산에 저수가에 소아청소년과가 점점 설 땅을 잃고 있다지만 아이들은 갈수록 더 자주 아픈 것 같다.

아이들을 진료하다 문득문득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문제, 극심한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적인 자연재해, 전쟁, 점점 커지는 빈부격차, 초등생들이 의대진학 학원을 가는 왜곡된 교육, 빈발하는 흉기난동이 떠올라 ‘장차 이 아이가 커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모두가 한데 뭉쳐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앞에서 진영으로 나뉘어 정쟁이나 하고 있으니…. 베이비붐 세대가 부모보다 잘사는 마지막 세대가 될 거라는데, 이 말이 틀려 우리 아들딸이, 진료를 받으러 오는 꼬맹이들이 더 잘사는 세대가 됐으면 좋겠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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