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AI시대, ‘노동의 종말’ 현실화될까

입력 2023-08-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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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상실 우려에 노동자 분노
새로운 산업나와 노동창출 전망
일자리 재편 대비…인력 양성을

인공지능 진화와 신기술 발전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2027년까지 5년동안 기존 글로벌 일자리의 23%가 구조적 변화를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기술진보로 인해 많은 인간의 노동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골드만삭스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AI가 일자리 3억 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회계사, 수학자, 통역사, 단순 사무직, 정략적 분석가 등은 장래에 없어질 직업의 우선순위로 꼽혔다. 생성형 AI 챗봇인 챗GPT 등장 이후 AI에게 인간의 노동을 빼앗기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이런 비관적 전망들은 힘을 얻고 있다.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과 AI의 충돌은 전 지구적 현상이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배우와 작가 노동조합 소속 17만 명이 최근 63년 만에 동맹파업에 돌입한 것은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노동자들의 저항의 산물이다. 미국자동차노조(UAW)도 최근 기술진보에 의한 일자리 상실을 막기 위해 정부의 기술 지원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인 포드, GM, 스텔란티스와 계약 갱신 협상을 벌이고 있는 UAW는 수십억 달러 보조금을 지급한 전기차 정책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을 보류하고 파업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술혁명은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노동자들의 거센 저항의 벽에 부딪혔지만 오히려 새 일자리를 만들며 인간생활에 큰 도움을 줘왔다. 1811년부터 7년여간 영국 중북부 공업지대에서 노동자들이 직물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은 실직위기에 몰린 노동자들의 일터 사수 운동이었다. 하지만 직물기계를 통한 직물 생산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며 일자리도 크게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1860년대엔 영국에서 증기자동차가 등장하자 마차를 몰던 마부들이 일자리 보존을 요구하며 들고일어난 적이 있다. 영국 정부는 마부들의 저항에 무릎을 꿇고 1865년 ‘붉은 깃발법’을 제정해야 했다. 이 법은 자동차 한 대를 운행하는 데 운전사 외에 차 수리원과 기수 등 3명을 배치해 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도록 한 족쇄였다. 기득권 세력인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켜주기 위한 이 규제법은 30년 동안 시행돼 영국 자동차 산업이 후발 주자인 독일과 미국에 뒤떨어지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술진보는 일자리를 늘리고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이 때문에 기술진보가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든다는 리프킨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전문가가 많다. 자동차가 보급되며 마부가 사라졌지만 자동차 제작, 운전 등과 관련해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났고, 전화통신 기술이 발달하며 전화교환원이 사라졌지만 통신업계 전문 직업들은 더 많이 생겨났듯이 다가올 미래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의 창출’ 시대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일자리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일본 독일 영국 등 다른 선진국의 고용률도 증가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30년 사이에 일자리가 무려 40%가량 늘어난 상태다. 1995년 2000만 명인 취업자수가 지난 6월 말 현재 2880만 명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질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일자리의 양이 엄청나게 팽창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리프킨의 ‘노동 종말론’은 산업 재편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단기적 일자리 대체 현상을 영구적 일자리 상실로 분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자리는 인간의 존재가치와 자존감을 키워주는 최고의 수단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일자리를 잃는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진단했다. 노동은 생계 수단이란 점에서 고달픈 측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아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신기술 등장으로 일자리 구조에 변화를 겪을 때마다 노동자들이 거세게 저항하는 것도 자존감 상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AI의 출현으로 일자리 재편은 필연적이다. 정부와 기업은 AI시대 일자리 손바뀜에 대비해 직업교육과 훈련을 통해 신기술에 필요한 인력양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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