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격진료 시범사업,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나

입력 2023-07-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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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에 줄폐업 공포가 번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탈모 전문 비대면 진료 플랫폼 ‘MO(엠오)’가 이번 달 서비스를 종료한다. 엠오는 TS샴푸 제조업체 TS트릴리온이 운영 중이다. 지난해 8월 서비스를 시작해 탈모 진단부터 진료, 약 배송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가입자가 1만 명 넘을 정도로 인기도 끌었다. 그 유망하던 업체가 원격의료의 전도가 불투명하자 문을 닫는 것이다.

엠오만이 아니다. 앞서 5월엔 남성용 종합 헬스케어 서비스 썰즈와 한의원 비대면 진료 플랫폼 파닥이, 지난달에는 비대면 질염 및 성병 검사 서비스 체킷과 맞춤형 영양제 서비스 바로필이 문을 닫았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시국에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를 지난달 시범사업으로 전환했다. 국민 건강을 지킨 비대면 진료의 싹을 살리는 일종의 응급조치였다. 하지만 시범사업 부실로 오히려 줄도산이 초래되고 있다. 여간 역설적이지 않다.

시범사업은 규제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초·재진 구별 없이 허용했던 코로나 때와 달리 재진을 원칙으로 한 점이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의원급 의료기관만 허용했고, 약 배송은 배제했다. 그 필연적 결과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만 18세 미만 환자의 경우 야간·휴일 비대면 초진이 가능하지만 약 처방은 받을 수 없다. 이런 진료를 누가 이용하겠나. 의료기관 사정도 딱하다. 재진 여부 확인이 필수여서 일일이 의무기록을 검토해야 한다. 초진이 허용되는 벽지 주민 등에 대해서는 각종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 누가 비대면 환자를 반기겠나.

코로나 3년 동안 비대면 진료 혜택을 누린 수혜자는 1400여만 명에 달했다. 대부분 초진 환자였다. 그러나 의사·약사단체는 그 명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원격진료 양성화에 부정적이다. 의사단체는 “의료사고를 부른다”고 외치고, 약사단체는 “의약품 변질·분실·오남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비대면 진료의 3년 경험칙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이런 목소리에 휘둘렸다. 결국 방향을 크게 잘못 잡은 시범사업 때문에 국내 의료산업을 획기적으로 키울 수 있는 원격의료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 형국이 됐다.

1400만 명도 넘던 수혜자가 이제 비대면 진료를 외면한다. 규제 장벽은 높고 실효성은 없는 탓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취소율은 시범사업 시행 전 17%에서 최근 40%까지 증가했다. 원격의료의 싹이 밟히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6개국뿐이다. 새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도 우리 특유의 우수한 의료 인프라를 바탕으로 ‘의료 허브’의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원격의료는 그 주축이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시범사업 얼개를 다시 들여다보기 바란다. 국회 책임도 무겁다.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성실히 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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