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34. 러시아 동결자산 처분 논란

입력 2023-07-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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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수한 러시아 자산 310조 원 … 미·EU, 우크라 재건費 충당 추진

지난 5월 12일 독일의 함부르크항. 수십 명의 경찰이 이 곳에 억류된 초호화요트 ‘루나(Luna)’를 압수수색했다. 러시아의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 파카드 아흐메도프 소유인 이 요트는 가격만 해도 4100억 원 정도다. 경찰은 루나를 샅샅이 수색해 프랑스의 샤갈 그림 등 명화 수십 점을 압수하고, 아흐메도프가 최소 500만 달러어치의 예술품을 신고하지 않아 독일 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도 현재 러시아 올리가르히 소유의 요트 1척과 러시아 화물선 4척을 억류했다.

국제법상 자산압류 가능…처분은 어려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주요 금융기관 및 푸틴을 지원하는 올리가르히에 제재를 가했다. 이 때문에 루나는 항구에 발이 묶였다.

이처럼 EU 각 회원국에서 러시아 자산이 동결돼 있다. 일부에서는 이 돈을 우크라이나 전쟁 복구 비용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행정부 역할을 하는 EU 집행위원회가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나 쉽지 않을 듯하다.

지난달 21일부터 이틀간 런던에서 우크라이나 재건 국제회의가 열렸다. 세계은행은 앞으로 10년간 우크라이나 복구와 경제 재건에 약 4110억 달러, 560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의 2배 정도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이 회의에서 EU의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몰수한 러시아 자산 2240억 유로, 310조 원 정도를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으로 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름이 끝나기 전에 구체적인 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29일부터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담에서도 EU 수반들은 집행위원회가 제출할 재건 비용 충당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성명서에서 강조했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배상금을 지불하려 하지 않기에 이를 강제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국제법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여러 나라는 침략전쟁을 응징하기 위해 무역제재와 자산 몰수 등을 단행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나 평화가 수립된다면 이 제재를 풀어야 한다. 국제법을 위반한 나라에 대해 제재를 부과할 수는 있지만 이 자산을 처분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

동결자산 활용한 수익에 횡재세 부과 검토

국제법에 국가면책 원칙이 있다. 한 국가나 국가의 대표를 다른 나라의 법원에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로 하여금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동결된 자산을 처분해 재건 비용으로 쓰는 것은 국가면책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EU 집행위원회는 동결된 자산을 투자하는 방안과 이 자산을 관리하는 기업이 뜻밖에 번 돈에 특별 세금(횡재세와 유사)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동결된 자산을 투자하는 방법은 매우 어려울 듯하다. 집행위원회가 이 돈을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지만 손실이 날 경우 EU가 그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

이 돈이 잠긴 벨기에 소재 유로클리어(Euroclear)에 특별 세금을 부과하는 안도 일부 회원국들이 반대한다. 유로클리어는 관리 중인 몰수된 러시아 자산 1966억 유로로 지난 1분기에 7억3400억 유로의 돈을 벌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 금리를 계속 올림에 따라 이자도 더 붙었고 일부를 재투자했다. 유로클리어는 세계 최대의 국제증권예탁결제기관으로 국채와 증권 등의 국경 간 거래의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러시아 국채와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둔 유로표시자산 등이 여기에 묶여 있다.

EU 회원국 안에서도 두 방안을 두고 논란이 크다. 독일과 ECB는 횡재세 부과가 더 낫다고 보지만 이조차 신중하다. 국제법을 위반한 이런 선례가 생긴다면 양날의 칼이 돼 미국이나 유럽 등도 유사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미국은 해외에 많은 자산을 보유 중이다. 이런 선례가 생긴다면 러시아나 중국도 비슷한 상황에서 언제든지 이 칼을 쓸 수 있다.

횡재세를 부과해도 일 년에 잘 해야 30억 유로에 불과하기에, 우크라이나 재건에 드는 비용에 턱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선례를 만들어 ‘되치기’ 당할 리스크가 더 크다. 또 횡재세 부과 시 국제경제에서 단일화폐 유로의 위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유로는 달러에 이어 두 번째 기축통화로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으로 보유 중인데 단일화폐 보유가 리스크가 된다면 당연히 꺼릴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조치로 지난해 4월 스페인 경찰은 스페인 팔마 데 마요르카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재벌 빅토르 벡셀베르크의 대형 호화 요트 '탱고'를 압류했다. 이 요트의 가격은 9000만 달러(약 1092억 원)로 알려졌다. 팔마 데 마요르카=AP연합뉴스

러에 ‘피해배상 요구’ 놓고 논란 커질 듯

미국과 에스토니아는 개별 국가 차원에서 조치를 마련 중이다. 미 상원은 대통령에게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몰수해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에 지출하도록 하라는 법안을 지난달 중순 제출했다. EU 전체가 동결한 러시아 자산 가운데 5000만 유로 정도가 에스토니아에 잠겨있다. 에스토니아는 최근 이번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나 법인에게 러시아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러시아가 침략전쟁으로 국제법을 위반, 우크라이나에 피해를 배상케 하는 것이어서 응당한 국가의 대응조치이기 때문에 국가주권 면책 조항의 적용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소수의 견해다.

미국이나 에스토니아와 같은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EU 그리고 서방선진 7개국(G7) 차원에서 유사한 조치를 합의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어쨌든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란이 될 듯하다. 미국과 유럽은 국제법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몰수된 러시아 자산의 처분을 대러시아 협상 카드로 계속해서 사용할 듯하다.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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