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들은 유령이 됐나…반복되는 비극, 어떻게 막을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3-07-03 15:59수정 2023-08-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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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모가 2명을 출산한 뒤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살해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출산 후 만 하루 이상이 지난 신생아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인데요. 낙태 비용에 부담을 느껴 친부인 남편도 속이고 출산해 2년 연속 아기들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전국에서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섰습니다. 조사결과 전국의 ‘유령 아동’이 무려 2236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에 정부는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 신고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와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를 병행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출산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는 산모들의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습니다. 정부·여당은 출생통보제가 1년 후 시행되기 전까지 보호출산제를 법제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찬반 여론이 팽팽해 쉽지 않은 모양샙니다.

전문가와 인권단체 등은 출생신고 누락을 막을 출생통보제가 뒤늦게라도 도입된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 이지만 병원 밖 출산 등 사각 지대를 막기 위해 나홀로 출산을 하는 경우에도 출생신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논란이 된 점과 해외의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방치하고 유기하고…속속 드러나는 전국 ‘유령 아동’ 범죄

감사원은 최근 7년간 2236명의 영유아가 출생신고가 안 된 것을 확인하고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조사에 들어가자마자 끔찍하고도, 슬픈 사건이 드러났죠. ‘수원 냉장고 영아’ 사건입니다. 출산한 자녀 두 명을 살해한 뒤 냉장고에 수년간 보관해 온 혐의로 경기 수원시의 30대 친모 A씨가 구속된 것입니다. A씨는 2019년 4월 대전에서 남아를 낳은 뒤 이 아이를 돌보지 않고 빌라에 사흘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더 끔찍한 사실은, 이 사건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연이어 경기 과천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과천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아동학대 및 사체 유기 혐의로 50대 여성 B씨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B씨는 2015년 9월 남아를 출산해 키우다가 아이가 사망하자 그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다운증후군이었던 아기가 며칠간 앓다가 사망했고 시신은 지방의 선산에 묻었다”고 진술했는데요. 경찰은 학대가 있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체은닉 혐의를 받는 경남 거제시의 부부도 구속됐습니다. 이 부부는 지난해 9월 출생한 아기가 닷새 만에 사망하자 거제의 한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이들 부부는 당초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가 숨져 있었다고 했지만 양가 부모가 알게 되면 헤어지게 될 것을 우려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경찰은 수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뒤늦게 드러난 ‘유령 아동’들의 상당수가 이미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95건의 수사를 의뢰받아 79건을 수사 중인데요. 이미 8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고 경찰은 74명에 대해 여전히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소재가 확인된 아이들은 13명이었는데, 대부분 입양되거나 시설에 입소해 생활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벌 조항 없는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는 여야 팽팽

정치권에서도 ‘유령 아동’사건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된다는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에 지난달 국회 문턱을 넘은 ‘출생통보제’가 내년 도입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유령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지자체는 이를 확인하고 일정 기간 신고가 되지 않을 경우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제도인데요. 출생신고 의무자는 부모에서 병원으로, 아예 출생 기록을 아예 등록하고 지자체까지 넘어가서 부모가 한 달 안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지자체가 확인하고 조치할 수 있게 바뀐 것입니다.

하지만 유기 범죄의 상당수가 미성년자나 미혼모가 낳은 경우인데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경우 이들이 일부러 병원을 가지 않고 몰래 낳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실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통계청 자료로 분석한 결과 2019년 한국 출생아 30만2676명 중 자택 988명, 그외 장소 296명, 미상 172명 등 1556명(0.5%)이 병원 외의 장소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출생등록제와 함께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출산 시 익명성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을 병행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의결된 출생통보제와 달리 보호출산제는 상임위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보호출산제가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양육 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야당의 우려가 나왔기 때문인데요.

정부·여당은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같이 도입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정당이 재확인했다며 조속한 결론이 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보호출산제가 갖고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동인권단체 측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보호출산제가 오히려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고 신생아가 향후 친부모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우려했는데요.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은 당사자 동의 없이 친부모의 인적사항을 파악할 수 없어 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유엔아동권리협약과 배치된다는 주장입니다. 출생통보제 의무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는 산모의 신분을 보호한다고 해도 영아 유기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느냐는 설명입니다.

아울러 정부가 산모에게 산모에게 임신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난달 29일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국회에서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촉구하며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출산을 선택한 여성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 지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원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위기 임산부를 지원하는 정부의 지원대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연합뉴스
“위기 여성 산모지원을”…해외 사례는

임신부터 출산까지 통합적 지원책이 없다면 임신 사실을 숨기거나 병원 밖 출산으로 영아가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습니다. 미혼모 등이 키우기 어려운 아이들은 국가와 사회가 맡아 양육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인데요. 해외에는 생명존중과 저출산 해법으로 미혼모 보호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1300곳의 임신갈등지원센터를 운영해 미혼모에게 상담과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친모가 익명으로 출산하면 성은 정부가 정하고 아이가 16세가 되면 출신증명서를 열람할 수 있게 해 산모의 익명 출산과 출생아의 알 권리를 동시에 충족시켜 줍니다.

프랑스는 친모에게 익명출산 기회를 제공하고 친모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자녀가 친모에 관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익명출산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임산부가 공립병원에서 본인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 1941년 제정되면서 시작된 전통인데요. 프랑스에서는 매년 600여 건의 익명출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의 경우도 부모가 신고하는 것과 아동의 출생지에서 통보를 하도록 하는 듀얼 시스템을 갖춰 태어난 순간부터 보호 받을 권리가 주어집니다.

우리나라는 그간 정부와 국회가 출생신고제와 출생통보제를 방치하는 사이 수많은 아이가 죽거나 실종됐습니다. 무책임한 부모의 탓이 근본 원인이지만 비극적인 사건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필요합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유령 영아 발생 소지를 없애기 위한 긴급지원체계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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