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

입력 2023-06-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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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정일환 부장. 조현호 기자 hyunho@
밤에 휘파람 불면 안 된다. 뱀 나오니까. 선풍기 틀고 자면 큰일 난다. 숨 막혀 죽는다. 빨간색으로 이름 쓰지 마라. 귀신한테 잡혀가는 수가 있다.

또 뭐가 있더라. 아 맞다.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제 명에 못 죽는다. 뇌가 녹아 없어지니까. 성주 참외를 먹을 때는 유서부터 써 놓을 일이다. 사드 전자파에 사람도 튀겨진다는데 참외 따위야.

우선 구석기시대 유물인 유사과학의 명맥을 21세기에도 꿋꿋이 이어가고 있는 괴담정치의 장인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쇠고기, 참외에겐 심심한 위로와 사과를 전한다. 가축이나 과일로 태어나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것도 억울한데 실컷 먹어놓고 한다는 소리 좀 보소. 다음 생엔 꼭 피라냐나 좀비로 환생해 인간을 씹어먹을 기회를 노려보기를. 뱀, 선풍기, 빨간펜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들 모두는 무식한데 신념만 가진 인간들에게 이용당했을 뿐 아무런 죄가 없다.

대신 과학자들에겐 서운한 소리를 좀 해야겠다. 드론이 날고 로봇이 음식을 갖다 주는 세상이 왔는데도 과학은 여전히 괴담 퇴치에 별 효험을 보이지 못하니 말이다.

괴담 대신 진실을 알려달라하면 영어와 숫자, 기호 뿐인 ‘OOO의 법칙’을 꺼내드는 과학자들을 보고 있자면 문과 출신들은 뒷목부터 잡게 된다. 수메르문자인지 상형문자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의 소통 방식은 ‘그냥 AI에게 물어볼 걸’ 후회가 밀려들게 만든다.

과학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를 담고 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약해 보인다. <의사들이 먹지 말라고 경고한 음식 Top5>라는 리스트를 보자. 5위는 라면, 4위는 마가린, 3위는 곱창과 막창, 2위는 햄과 소시지며, 대망의 1위는 탄산음료다. 원효대사마저 분노의 석장을 휘두를 소리다. 마가린은 과자에 양보할 수 있다. 하지만 라면과 곱창, 햄, 탄산음료를 먹지 말라니!. 신의 물질인 MSG와 설탕, 나트륨이 빠져나간 육체에 피폐해진 영혼만 남아있는게 건강한 삶이라면 차라리 맛있게 먹고 일찍 죽는게 낫지, 의사 말 따위... 이렇듯 과학으로 사람을 분노하게 만드니 많은 이들이 유사과학과 괴담을 못잃어 할 수밖에.

과학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놓고도 괴담과 양보 없는 일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라면 과학은 언제나 승리해야 한다. 그런데 노량진 시장에는 발길이 끊겼고 천일염은 동이 났으며, 미역까지 사재기하고 있다고 한다(물론 이마저도 선동이 포함된 과장이다). 어찌 된 일일까.

과학자들의 말부터 들어보자.

“오염수는 다핵종제거장치(ALPS) 처리 전후와 탱크 보관 단계, 방류를 위한 희석 전후 등 최종 방류 시점까지 수차례에 걸쳐 방사능 농도를 측정하므로 고농도의 방사성 오염수가 배출될 가능성은 없다. 또 오염수는 후쿠시마에서 수 킬로미터만 가면 희석되고, 1리터(L)에 1베크럴(Bq)의 삼중수소가 나온다. 당장 한강 물을 떠서 측정해도 1L에 1Bq이 나온다”

좋은 말씀 감사하지만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은 주기율표와 화학기호표 외우기를 게을리 한 내 업보일 것이다.

이제 괴담을 들어보자. “후쿠시마 앞 바다에서 세슘 범벅 우럭이 잡혔다. 이런데도 핵 폐수를 방류하는 일본의 행위는 우리 바다 침공이다” 세슘이 뭔진 잘 몰라도 어마무시한 물질이라는 건 알겠고, 우리 가족에게 생선을 먹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일본은 못참지!

광우병 괴담으로 동네 정육점이 줄줄이 망했고 사드 전자파 괴담으로 성주 참외 농가들은 6년 넘게 고통 받았다. 이제 어민과 횟집 사장님들 차례다. 괴담이 지나간 곳에는 항상 서민들의 피눈물과 곡소리가 남는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보이면 멀쩡한 사다리를 부숴버린 뒤 “내가 구해주겠다!” 동네방네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선동 정치의 유구한 산물이다.

아무리 과학이 위대하다 한들 패러데이의 법칙으로 선동 문구를 물리칠 수는 없다. 괴담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는 죽은 자의 말 따위를 믿고 안심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불안을 깨는 유일한 무기는 확신이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상식이라야 확신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일본에게 더 확실한 조치를 강력히 주문해야하고, 안전하다고 믿을만한 증거를 일본 스스로 가져오라고 요구해야한다. “기준에 맞다면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는 먹방 정치 따위로 반일감정과 유사과학 연합군에 맞선다면 백전백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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