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풀린 800조원 주식과 부동산에 몰려
시중에 풀린 800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이 실물로 가지 않고 자산으로 몰리면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고 있다.
최근의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일부 긍정적인 경제지표가 나오고 있지만 일종의 착시 현상으로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더블딥'을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실물경제의 견실한 회복세가 뒤따르지 않는 이상 자산시장의 상승세는 일시적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6일 코스피지수는 7개월만에 한때 장중 1400선을 넘어서는 등 지난해 9월말 리먼브라더스 파산 당시 수준까지 회복했다.
이달 들어 국민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 집값은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전환됐다.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결국 국내 자산시장은 지난해 10월에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 발발 이전 수준까지 회복돼 바닥을 친 게 아니냐는 낙관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실물경기는 본격적인 회복을 알리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와 실수요자의 섣부른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 긍정적 경제지표도 전월이나 전분기 대비해 호전된 것
최근 긍정적인 우리 경제지표로는 산업활동동향과, 국내총생산(GDP)이 있다. 경제 위기 전인 전년 동기 대비로는 여전히 크게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경제위기 후인 전월이나 전분기에 비해서는 상승해 경기가 바닥을 다져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예측을 낳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월과 3월 광공업생산은 전월대비 각각 6.8%, 4.8%가 증가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전년 동월 대비해서는 모두 10% 이상 감소한 것이지만 지난해 11월 부터 1월까지 사상최저치를 경신한 것에 비하면 호전된 것이다. 1분기 실질GDP는 전기대비 0.1%가 늘었고 전년동기대비 -4.3%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표들이 있다.
또한 수출은 줄고 수입이 더 크게 감소해 발생하는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역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3월 경상수지는 66억5500만달러라는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지만 수출 감소세는 전년 동월대비 -17.8%지만 수입 감소는 이 기간 -35.8%까지 확대되면서 사상최대의 흑자를 냈다.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에서 실업자 수는 95만2000명까지 늘었고 4월 동향에서는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우리경제는 가운데 미국의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미국 경기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미국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는 이달 보도에서 미국의 공공 부채가 전례 없이 빠르게 늘어나 올 하반기 의회가 설정한 상한의 12조1000억달러를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의회예산국(CBO) 집계를 인용해 공공 부채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1%이던 것이 올해 51%로 상승할 전망이라면서 이 추세로 가면 2011년에는 GDP의 54%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재정전문 리서치 기관인 라이츤 ICAP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재정적자만도 9568억달러에 달해 2차 대전 후 가장 큰 규모라고 보도됐다.
결과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미국 주요은행들에 대한 유동성 확충 사안인 스트레스테스트도 복병이다.
◆ 정책 수장들 "섣부른 낙관 경계해야"
정책 수장들은 최근의 경기 상황에 대해 섣부른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다. 금리 인하 등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으로 풀린 돈이 현재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이상 급등하고 있다는 진단하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말 임시국회에서 "현재 상황은 유동성 과잉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돈이 실물경제로 아직 흘러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시중에 돌아다니는 유동성 중 일부지만 현재 한국은행이 풀어놓은 돈은 풍부하다"며 "하지만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회사채에 대한 신뢰가 시장에서 여전히 미약하고 수출전망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기업들도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최근 상황을 진단했다.
경기부양 정책 효과가 소진되고 이달들어 금융당국이 본격화하는 강도높은 기업 구조조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최근 자산시장의 과열은 '버블' 현상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우세하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6일 간담회에서 "시장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 결국 시장의 응징과 책임추궁이 있을 것"이라며 "정부차원에서도 대기업의 잠재부실이 시장 전반의 어려움으로 확산되는 것은 확실히 차단하겠다"며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사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무역수지가 3~4월 흑자를 기록하고 경제지표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지만 경기침체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외국에서 발생하는 조그만 상황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이후 줄곧 공식석상에서 "현재의 경기에 대해 낙관할 수도 비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해 왔다.
지난주 위기관리 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윤 장관은 "경기 하강 속도가 완화되고 있을 뿐 경기 하강 방향성은 그대로"라며 "실물 부문에서 회복을 나타내는 신호가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