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복합형 선거제 주목되지만
지역불균형 해소에는 도움 안돼
비례대표제 강화가 효과적 대안
지난 5월 12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진행된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가 마무리됐다. 숙의와 설문에 모두 참여한 시민참여단 469명의 의견은 숙의 전후 크게 변화했다. 12일 KBS 생방송에서 발표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운영하되 그 비율을 줄이더라도 비례대표 의석은 늘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도 용인할 수 있다.”
이제 공은 선거법을 고칠 권한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다시 넘어갔다. 기대에 비해 언론과 정치인들의 반응이 뜨겁지는 않지만 공론조사 결과를 엄중히 대하려는 간헐적인 노력은 보인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5월 22일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여야가 선거제도 개편의 방향을 놓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도농복합형 선거구제가 절충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이번 공론조사에서 도농복합형 선거구제에 찬성한다는 시민참여단의 비율은 숙의 전 48%에서 숙의 후 59%로 11%포인트 증가했다. 국회의장은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도농복합형 선거제도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기 때문에 국회 내 합의 과정에서 이 제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는 기본적으로 지역구의 크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는 도시 지역에서는 3인 이상 5인 이하의 국회의원을 한 지역구에서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농산어촌 지역에서는 지금처럼 하나의 지역구에서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현재 전국을 253개 지역구로 쪼개 각 지역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제도를 바꿔 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긴 하나, 양대 정당이 의석을 과점하는 결과를 낳는 소선거구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해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겠다는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
도농복합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이유는 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과 맞물려 농산어촌 인구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구 유권자의 인구 상한과 하한의 편차를 2 대 1로 맞춰야 하는 법적인 제약을 고려하면, 도시의 지역구 면적 대비 농산어촌의 지역구 면적이 지나치게 큰 경우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2020년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논의된 속초시, 고성군, 양구군, 인제군, 화천군, 철원군을 묶는 하나의 지역구는 서울시 전체 면적의 8배가 넘지만 인구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지역구이다.따라서 생활권을 무시한 채, 서울시 내 하나의 구를 세 개 이상의 지역구로 쪼개면서, 농산어촌의 세 개 이상 군을 하나의 지역구로 묶는 상황은 피해보자는 것이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를 제안하는 배경이다.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를 제안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지역불균형 발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가 빈약하다.
첫째,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를 도입하면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을까? 부산, 대구, 광주와 같은 도시에 중선거구제를 도입해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뽑도록 하면 영남과 호남에 팽배한 실질적인 일당 독재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그래봤자 양대 정당이 나눠먹는 구조로 바뀌는 것 아닐까. 국가 전체적으로 양대 정당의 의석 과점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영호남 지역이 일당 독식에서 양당 지배로 바뀌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인가.혹시라도 정당이 중선거구제를 채택한 지역구에 복수의 후보를 공천할 수 있다면 일당 독식 구조가 그대로 유지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둘째,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를 도입하면 지역불균형 발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그러려면 농산어촌의 이익을 대표할 의원 수가 늘어나서 입법과정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야 될 것이다. 국회의원 총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농산어촌을 대표할 의원 수를 늘리려면, 중대선거구가 도입되는 도시의 의석수를 줄이는 대신, 농산어촌 지역구의 수를 지금보다 늘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 정한 지역구 간 2 대 1이라는 인구비율 원칙과 충돌되지 않도록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셋째, 도농복합형 선거제도를 도입하면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농산어촌 지역의 인구를 늘린다는 생각은 허황된 백일몽이다. 지방소멸이라는 인구, 일자리, 교육, 보육, 보건 등이 중첩된 문제는 선거제도 개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지방소멸 문제를 선거제도 개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요리사가 과도(果刀)를 들고 회를 치려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선거제도의 틀 안에서 도시와 지역 간의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상식적인 대안이다. 비례대표의 비율을 늘리면서 각 정당이 농산어촌의 이익을 대변해 줄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는 방법보다 도농복합형 선거제도가 더 나은 이유가 무엇인지 누군가가 잘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