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둘리 귀환에 눈가 촉촉해진 코딱지들 [이슈크래커]

입력 2023-05-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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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워터홀컴퍼니)

요리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는 그 녀석. 어릴 적엔 응원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얄미운 그 녀석. 온몸이 멍이 든 초록색을 하고 오로지 “엄마”를 외치는 그 녀석. 아기공룡 둘리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올해로 탄생 40주년을 맞은 인기 만화 ‘아기공룡 둘리’가 24일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이하 얼음별 대모험)으로 재탄생했죠. 1996년 첫 상영 당시 전국을 휩쓴 추억의 작품을 4K급 화질로 손질해 선보이는데요.

얼음별 대모험은 매일 같은 구박에서 탈출하고자 빨리 어른이 되기로 한 둘리와 친구들이 악명 높은 타임 코스모스의 오류가 모두를 미래가 아닌, 정체불명의 얼음별로 데려가는 바람에 생긴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그 시절 둘리를 다시 만나볼 생각에 가슴이 뛰고 있죠. 특히 개봉 전 ‘고길동의 편지’가 전해지며 둘리와 함께 자란 세대의 눈물 바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호이가 계속된 그 둘리를 아시나요

▲(출처=워터홀컴퍼니)
둘리는 1983년에 탄생한 대한민국 SF/명랑만화인데요. ‘둘리 아빠’로 불리는 김수정 작가의 대표작이죠.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의 소시민 고길동 가족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군식구 아기공룡 둘리와 타임 코스모스의 고장으로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도우너,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타조 또치 등이 함께한 일상을 코믹하게 그렸죠.

둘리는 본래 공룡시대에 살고 있었던 아기공룡인데 빙하에 갇힌 뒤 ‘냉동 공룡’(?)이 되어 신체나이 8살의 모습으로 현시대에 내려왔는데요. 종은 케라토사우루스입니다. 피부는 초록색이며 혀를 항상 빼물고 다니죠.

외계인에게 뇌 수술을 받은 덕에 말도 잘하고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데요. 초능력을 사용할 때 하는 주문(?)이 바로 “호이!”입니다. 영화 ‘부당거래’의 유명한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의 패러디 버전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가 여기서 파생된 거죠.

둘리는 2008년에 ‘NEW 아기공룡 둘리’로 방영되기도 했는데요. 과거 진녹색의 둘리와 달리 연둣빛으로 돌아온 덕에 “둘리는 진녹색인가 연녹색인가”로 세대 구분을 하기도 한다죠.

심술쟁이 고길동? 그는 대천사였다.

▲(출처=둘리나라)
아들 철수와 딸 영희가 데려온 군식구 둘리도 눈엣가시인데 도우너, 또치까지 제집인 양 데려온 모양새가 고길동으로서는 속이 터질 일이었는데요. 어릴 적 둘리와 둘리 친구들을 구박하고 괄시하는 모습의 고길동은 그야말로 ‘심술쟁이’의 모습이었죠. 나름 도우려고(?) 한 일이지만, 고길동의 머리와 옷을 망가뜨리고, 귀한 도자기를 깨뜨린 둘리 일당. 당연한 듯 터져 나오는 고길동의 ‘사자후’는 어린 시절 참으로도 너무했었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 고길동이 얼마나 ‘천사’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30대 후반의 나이의 평범한 샐러리맨(a.k.a 만년 과장)인 고길동에게 아내와 두 자녀도 버거울 텐데 조카 희동이와(+이후 양동이까지) 둘리네 군식구들의 식사와 거주를 책임지는 엄청난 ‘대천사’였죠.

거기다 얼음별 대모험에서 평범해 보였던 고길동이 국자와 가시고기의 뼈 등을 들고 외계인을 물리치는 등 놀랄 만한 활약을 보이자 그를 ‘검성 고길동’, ‘소드마스터 고길동’이라는 밈(meme)까지 등장했는데요. 또 외계인(바요킹)들에게 붙잡힌 고길동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수 설운도의 ‘나침반’을 부르는 장면 역시 뒤늦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죠.

눈물 흘리게 한 고길동의 편지

▲(출처=워터홀컴퍼니 인스타그램 캡처)
재조명되는 고길동에 관한 관심을 제작사가 모를 일 없었는데요. 영화 배급사 워터홀컴퍼니는 23일 인스타그램에 “고길동 아저씨가 지금의 나에게, 당신에게, 세상의 모든 작은 둘리라는 이름의 우리에게 이런 편지를 써준다면 잠시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글과 함께 고길동의 편지를 공개했습니다.

편지에서 고길동은 둘리와 친구들을 괴롭혀 ‘악역’으로 자리매김했던 자신의 과거를 소환했는데요. “이제 다들 제 역할을 이해한다면서요? 제가 악역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었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껄껄”이라며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거절과 후회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음을 아는 것”이라는 ‘진정한 성인’의 모습 그대로였죠.

또 추신을 통해 그 시절 앙숙 둘리에게도 인사를 건넸는데요. 고길동은 “둘리야 네가 이제 마흔이라니, 철 좀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철들지 말 거라. 네 모습 그대로 그립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강해라. 그리고 오래오래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가 주렴”이라고 그간 볼 수 없던 따뜻한 말을 전했죠.

고길동의 편지에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길동에게 보내는 반성의 편지가 이어졌는데요. “어렸을 때 몰라뵌 거 죄송해요”, “그때 고길동 아저씨의 나이가 되어보니 눈물이 납니다”라는 후회와 감사함 일색이었죠. 일각에서는 “너무 글이 착해서 고길동이 아닌 것 같다”라는 의혹도 일긴 했지만요.

영화 리마스터링 계획에 맞춰 에세이 ‘둘리, 고길동을 부탁해’(열림원)도 재출간됐습니다. 말썽꾸러기 식구를 끝내 내치지 않은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씨의 소유자이자 여러 식구의 가장이었던 그를 중심으로 한 따뜻한 이야기를 그렸죠.

“다시 만나 반가워” 축전도 남다른 둘리

▲(출처=워터홀컴퍼니)
추억이 함께하는 영화답게 관람객들에게 제공되는 축전도 남다릅니다. 1990년대 동네에 하나씩 있던 비디오 대여점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 ‘둘리 비디오 대여점’을 열었죠. 비디오테이프를 비롯한 90년대 둘리 굿즈 전시로 관객들의 추억과 관람 욕구를 자극했는데요. 이 팝업 스토어는 예약 오픈 5시간 만에 전 일정이 매진됐습니다.

개봉에 앞서 진행된 프리미어 상영회에서는 추억의 껌 만화를 증정하기도 했는데요. 과거 풍선껌 패키지 안에 들어있던 껌 크기의 미니 만화가 돌아온 거죠.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씨네Q 등에서 오리지널 티켓과 아트카드 등도 발행하고 있습니다.

추억소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중장년층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누적 관객 수 460만 명을 넘었는데요. “우리도 있다” 대한민국표 그때 그 시절 향수 둘리와 친구들이 그 기록을 깰 수 있을까요? 말썽꾸러기 둘리와 친구들도 ‘대천사’ 고길동도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와 준 감사함을 극장에서 전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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