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최영훈
이제 봄인데, 그녀의 안색은 한여름 습기찬 무더위에 예민해지고, 지친 듯한 표정이다.
“현실은 참 시궁창 같아요.”
“……”
나는 조심스럽게, 선선하고 건조한 바람 같은 가벼운 제안을 하였다.
“저랑 같이 한번 사고실험을 떠나 볼까요?”
“그러시던지요….”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통증을 못 느끼게 됐어요.처음에는 잠시 좋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요. 그런데 뜨거운 물도 그냥 삼키고, 날카로운 물체에 찔려도 모르고 지나가겠죠. 그러면 신체가 특히 손, 발처럼 자주 물체와 접촉하는 부위부터 손상되기 시작하지 않겠어요. 실제로 한센병에 걸리면 감각이 마비돼 손, 발이 썩어 떨어지기도 해요.”
“그건 신체적 고통이고, 전 정신적 고통을 말하는 거예요!” 냉소와 절망을 실은 눈빛을, 그녀는 보냈다.
“옳은 지적이세요. 자 계속 상상을 이어갈까요. 이어서 ‘마음의 괴로움’도 없어진 경지에 이르렀네요. 불안, 우울, 공격성, 열등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졌어요. 그러자 직장을 그만두어도 우울하지 않고, 운전시 과속을 해도 불안하지 않고, 사기꾼이 내 재산을 가져가도 분노하지 않고, 자녀들은 시험을 못 봐도 열등감을 안 가지고….”
“…….” 그녀는 진지하게 듣고 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은, 생존에 매우 불리한 조건들을 마주칠 때 피하고 극복하도록 진화하였는데 그럴 때 느끼는 감정은 적어도 인간에게서는 고통입니다.”
그녀가 말을 이어나간다. “고통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고통은 생명을 유지하고 번성하게 하는 제1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생을 다하는 날까지, 고통 없는 날을 가지지 못할 거예요. 고통은 악이 아니라, 집 지키는 강아지 같은 거라 생각해요. 강아지가 너무 짖어도 문제, 안 짖어도 문제이지요. 적절하게 짖도록 잘 조절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녀가 맑은 미풍을 맞고 있는 듯한 안색을 띠는 것을 보며, 나 자신도 같은 바람을 쐬고 있다는 느낌이 스치고 지나간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