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속 진영논리 치열해져
분단 현실서 국내지지는 필수적
국민이해 구하는게 최우선 작업
국제정치학에서 양면게임이론은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이 1988년 정립한 이론이다. 이 이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국제협상은 국내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이며, 국내 정치적 요소가 국제협상에 있어 합의의 재량과 영역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푸트남 교수는 합의 가능 영역을 ‘윈셋(win-set)’이라고 명명했는데 국가 간 협상에서 공통인 영역, 국가와 국내 이익집단 간 협상에서 공통인 영역이 넓어야 합의의 영역도 넓어진다. 예를 들면 한미 FTA 협상은 전체적으로 국익에 기반한다고 하더라도 쇠고기 수입을 우려하는 농축산업계 반대가 심할 경우 협상의 윈셋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외 협상과 국내 비준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는 타국과의 관계에서 이미 국내 정치적 상황과의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북핵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적용해 보자. 지정학적 위치상 강대국에 끼여 있는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에 북한은 전쟁이 종결되지 않는 교전국가다. 그리고 핵개발과 불법행위를 일삼는 불량국가다.
미국의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됐더라도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는 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의회에서 적성국 교역법, 수출통제법, 각종 제재 관련 법안 등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에 부과한 제재를 풀어줄 리 없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곤경을 겪고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재 해제와 관련된 북한의 요구를 받지 못했던 이유도 국내 정치적 게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북한과의 관계에서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문제에 있어 여야 할 것 없이 같은 대응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적극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에 비해 일본 정부의 반향이 미지근한 것도 국내 정치적 게임에서의 윈셋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통제가 가능한 권위주의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보다 국내 정치적 게임을 잘 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신격화돼 있는 백두혈통의 지도자라도 권력 내 이너서클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사요충지였던 개성과 금강산 사업을 추진할 때 군부의 반대를 무릅썼다고 토로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막강한 핵무력을 가졌음에도 국방 분야 성과에 비해 초라한 농업, 민생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의 민심을 살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도 주변국 관계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한다. 북한의 핵개발은 반대하지만 북한을 압박하는 식의 문제 해결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주변국의 평화와 안정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보편적 인식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 초기 중국 내에서 과연 북한이 자산(asset)인지 부담(burden)인지에 대한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전략적으로 명확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냉전 이래 오랜 분단구조가 내면화돼 있는 주변정세와 국내정치를 감안할 때 우리의 외교 윈셋은 늘 재량의 발목을 잡아 왔다. 주변 강대국 간 사이가 좋다면 우리의 외교적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남북 간에도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되나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강대국의 양자택일 압박에 직면했다. 더욱이 강대국 간 대결구도가 냉전적 이데올로기나 진영논리와 맞물릴 경우 국내정치 역시 이념화된 대결적 게임을 치열하게 전개한다. 국내정치가 국제협상을 제약할 가능성이 애초부터 크다.
따라서 분단국이라는 멍에 때문에 우리의 외교협상은 국내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국익에 부합된다는 논리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국제협상은 결코 국내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물론 시간의 경과와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 국익이라는 것도 상대적이다. 지난 정부 탓만 하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지난 정부 때는 그것이 국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정치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외교협상에 주력하는 것도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무리수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면게임 이론은 외교협상이 제대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소상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작업이 기본 중의 기본임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