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왜 야구단 안 없애세요?”…‘만년 꼴찌’여도 야구팀이 사랑받는 이유 [이슈크래커]

입력 2023-04-26 15:51수정 2023-05-0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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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올해는 정말 행복하고 싶어요, 네?

매년 매주 매일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쳤던 웃픈 사연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도무지 행복해 보이지 않고, 그들 스스로도 내가 행복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목청껏 외쳤던 a.k.a 보살, 바로 한화 이글스팬들인데요.

한화는 2009년 시즌부터 ‘꼴찌 한화’라는 지긋지긋한 간판을 좀체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꼴찌를 벗어나기 시작하더니 2018년에는 3위까지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곧 하위권으로 꼬꾸라졌죠.


▲(출처=SBS Sports 캡처)


그 유명한 보살팬, 한화이글스는 뭔 복일까

꼴찌인 주제에(?) 팬 복은 넘치는 한화인데요. 강성팬덤이라 불리는 엘·롯·기(엘지·롯데·기아) 팬들과는 또 다른 양상이죠. 14:0으로 뒤지고 있다가 겨우 얻은 1점, 강성팬덤들이었다면 10점 차 훨씬 전에 경기장을 떠나버렸을 텐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팬들은 1점에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팬들의 너그러움에 방송 캐스터와 해설진도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한화팬을 향한 밈도 넘쳐나는데요. 이 밈까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이죠. 조롱의 대상이지만 팬들은 허허 웃어넘기는데요. 인내심이 강하다는 장점을 적어낸 입사 지원자에게 면접관이 이를 어찌 증명할 수 있냐고 묻자 “10년째 한화 팬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장내가 숙연해졌다는 이야기부터, “한화가 5연패를 한 이유는 5경기를 했기 때문이다”라는 자아 성찰의 사연까지 정말 다채롭죠.

한화 이글스의 오랜 팬으로 알려진 개그맨 최양락은 유튜브 ‘희희양락’에서 한화 이글스 구단주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영상편지를 남겼는데요. “김승연 회장님께 묻습니다. 10년째 꼴찌에도 해체를 안 하고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팬들도 생각을 해주셔야죠”라고 말입니다. 팬을 안 할 수는 없으니 그만해 달라는 웃픈 바람뿐 아니라 ‘리빌딩’만 몇 년째인 구단을 향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작은 바람일 텐데요. 그만큼 ‘야구 사랑’이 넘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겠죠.


▲(뉴시스)

만년 꼴찌여도 구단 운영은 계속

이처럼 성적이 부진해도 기업들이 야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계에 따르면 한화가 계속 야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기업명을 홍보할 수 있는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한화는 주력분야가 기업간거래(B2B)이다 보니 일반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KBO리그에 참여하는 구단 중에서 B2B 기업이 운영하는 곳은 두산베어스와 한화이글스 두 곳인데요. 전자·소비재·게임사 등으로 대중이 일상생활에서도 기업명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인 타 구단과 다릅니다. B2B 사업이 주력인 기업에서 이처럼 친숙하게 기업 이름을 받아들이는 점은 야구단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죠.

그래서일까요. 원년 멤버인 두산베어스(1982년)와 초기에 합류한 한화이글스(1986년)의 경우 여러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도 구단 주인이 바뀌지 않았죠. 두산은 OB 매각으로, 한화는 빙그레와의 계열 분리로 이름이 바뀐 것이 전부였습니다.

꼭 기업 홍보만이 목적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야구단을 ‘수익창출’의 역할로 보기보단 사회 공헌적인 측면에서 운영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1990년만 하더라도 홍보를 위해 야구단을 운영했다면, 지금은 비단 홍보에만 머물지 않고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보답의 역할을 하는 셈이죠.

정무적인 판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한화 구단의 경우 충청권 기업이라 구단 운영에서 쉽게 손을 떼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화를 대체할 충청권 대기업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를 매각한다면 지역민들의 어마어마한 비난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한화뿐만 아니라 기아나, 롯데 등도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뉴시스)


구단주도 팬이에요

구단 운영의 큰 이유는 다름 아닌 구단주의 야구사랑도 있는데요. 두산 베어스의 구단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야구 사랑은 재계에서도 유명하죠. 실제 재계 총수 가운데 야구장을 가장 많이 찾은 인물이기도 한데요. 2023시즌 이승엽 신임 감독의 영입 또한 박 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졌습니다. 채권단 관리체제 시절이던 2020년에도 두산 베어스만은 팔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후문도 있죠.

박 회장에 이어 최근 유별난 ‘야구 사랑’을 보내는 구단주가 있다면 SSG랜더스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입니다. 정 부회장은 2021년 SK와이번스를 인수했는데요. 전 모기업 SK텔레콤의 매각결정에는 정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요.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 와이번스를 품에 얻게 된 정 부회장은 2022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에 올려놓기도 했죠. 정 부회장은 자주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팀에 대한 애정을 뽐냈습니다.

김 회장의 야구 사랑도 빠질 수 없겠죠. 2018년 한화 준플레이오프 때 직접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은 바 있던 김 회장은 2011년 팬들에게 “김태균을 잡아 오겠다”라고 약속한 이후, 실제 김태균을 영입한 일도 있었습니다.


▲(출처=jtbc 캡처)


“죽어도 팀 세탁은 못 해요”

한화가 아무리 못해도 팀 세탁은 못 한다는 팬들인데요. 선수들은 FA가 가능할지 몰라도 팬들에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한화는 마치 세월을 함께한 또 다른 자식과도 같아서 못한다고 해서 버리는 것이 아닌 끝까지 품어야 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한화는 지역 연고가 살린 팀일 수도 있는데요. 강성팬덤으로 유명한 지역에 한화가 있었다면 일찌감치 여러 테러(?)와 격한 악플에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충청도 특유의 느긋하고 인내심 있는 거기다 고집 있는 츤데레 기질이 한화를 살렸다는 평가죠.

그래도 경기는 이겨야 경기 아니겠습니까. 제발 올해는 팬들에게 보살이란 별명대신 ‘꽃신’을 신겨주는 한화 이글스가 되길 바라봅니다. (물론 4월 26일 기준 한화는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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