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1억원' 예금자보호 한도 이번엔 오를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3-03-28 16:48수정 2023-03-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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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
전 세계 곳곳에서 은행 위기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 은행의 위험은 각기 다른 요인에서 기인합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은행의 자본구조가, 크레디트스위스(CS)는 재무통계와 내부통제 문제가 위기를 촉발했죠. 공통점도 있습니다.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우려가 사태를 키웠다는 점인데요.

은행 위기는 국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만큼 각국은 혼란 수습을 위해 여러 방안을 동원하고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예금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예금보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예금보호한도란 금융사가 영업정지, 파산 등의 이유로 예금자에게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 대신 지급해주는 돈의 한도를 말하는데요. 한국에서도 예금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美 예금보호한도 상향 검토…25만 달러↑

미국 재무부는 예금보호한도 한시적 상향을 검토 중입니다. 22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스트저널은 미국 재무부 관계자들이 현재 계좌당 25만 달러(약 3억2383만 원)인 예금보호한도를 의회의 공식적 동의 없이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금융당국이 광범위한 예금을 보장하려면 2010년 금융위기 이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요. 의회 승인 없이 재무부가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외환안정기금 300억 달러(약 38조9700억 원)로 이러한 과정을 회피하겠다는 뜻입니다.

일각에서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 보장 한도 자체를 바꾸자는 논의도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이크 라운즈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 역시 현행 25만 달러 한도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예금자들을 위한 장기간 보호를 통해 중소 지역 은행 예금자들에게도 대형 은행 예금자들만큼 (예금 보호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부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은 이러한 예금 보호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이날 상원에서는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포괄적 보험’ 관련해서는 어떤 것도 논의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는데요. 바이든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이튿날인 23일 입장을 틀어 “확실히 우리는 필요한 경우 추가 조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예금 보호 조치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AP/뉴시스)
CVB 파산 불러온 뱅크런

미국이 예금보호한도를 검토하는 건 최근 잇따라 중소 은행 파산 사태가 발발한 데 따른 것입니다. 시작은 자산을 장기증권에 대부분 투자한 암호자산 전문은행 실버게이트은행의 8일 청산 선언이었습니다. 이어 실리콘밸리의 자금줄로 불리던 실리콘밸리은행(SVB)가 10일 파산했죠. 12일에는 뉴욕 지방은행 시그니처뱅크가 파산했습니다. 이후로도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자금조달여건과 자산구조가 취약한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파산 위기와 주가 폭락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16위 규모의 은행인 SVB의 파산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이후 최대 규모로 주목받았습니다. 하루 만에 400억 달러(약 52조 원) 이상의 예금이 빠져나갔죠. 기준금리 급등에 의한 위기관리 실패가 SVB의 1차 위기를 불러왔다면, 이 사실을 채팅 앱 등으로 알게 된 예금주들의 뱅크런이 파산에 불을 붙였죠.

미국은 공황 상태를 막기 위해 ‘시스템적 위험에 따른 예외’에 따라 SVB, 시그니처은행의 예금 전액을 보장한다고 밝혔습니다. 연쇄 뱅크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건데요. FDIC는 SVB 예금 보호로 인한 예금보험기금 손실 규모만 약 200억 달러(약 2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뱅크런 우려 전 세계 금융권으로 확대…한국도 위험할까?

유럽에도 스위스 투자은행 CS를 필두로 한 금융권 위기가 찾아와 전 세계는 긴장하고 있습니다. CS는 167년 역사를 지닌 세계 9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으나 15일 하루 주가가 장중 30% 이상 급락하며 위기를 겪었습니다.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의 인수로 파산을 모면했죠. 이외에도 코코본드 상각 이슈를 겪은 독일 최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 등 금융권 위기가 잇달아 일어나는 등 ‘뱅크데믹’ 우려가 전 세계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 금융권의 위기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23일 한국은행은 ‘금융안정 상황’ 자료를 통해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최근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했다고 밝혔습니다. 한은은 “미국 SVB 파산 사태 등이 국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국내 금융기관은 SVB 등과는 자산 및 부채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산 비중 가운데 국채 비율이 높았던 SVB는 고금리 정책에 직격타를 입었지만, 국내 금융기관은 예대업무 위주로 영업을 꾸리고 있고, 총자산 중 채권 비중이 작아 위험이 크지 않다는 거죠. 실제로 채권 비중이 56.7%에 달했던 SVB에 비해 한국의 일반은행과 저축은행 채권 비중은 각각 18.1%, 4.8%로 크게 낮습니다.

한은은 그러면서도 SVB 사태와 같은 대외 불안요소가 우리나라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위험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최근 사태가 일부 취약 금융기관에 대한 불안을 키울 수 있다고도 짚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22년간 안 오른 예금보호한도…1억 원까지 올릴까

금융 위기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만큼, 우리나라도 비상 상황에 대한 선제 대응으로 예금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사실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은 1인당 보호한도 금액을 원금과 이자를 합해 5000만 원으로 정하고 있죠. 2001년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늘어난 뒤 22년간 유지된 기준입니다. 이에 성장한 한국 경제 규모에 반해 보호 한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2년 9월 기준 부보예금(정부·지방자치단체·부보금융기관 등을 제외한 예금주가 은행 등에 예치한 예금 가운데 예금보호공사에 의해 보호되는 예금)은 2843조 원에 달하죠.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낮은 수준입니다. 19일 예금자보호공사가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업권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 보호 한도는 1.3배입니다. 국제통화기금이 말하는 보호한도(1~2배)에는 해당하지만, △미국(3.7배) △영국(2.5배) △일본(2.2배) 등 주요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죠. 현재 가장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보호 한도는 1억 원입니다.

다만 한도 상향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단기적으로는 보호 한도를 높였을 때 저축은행 등의 수신 경쟁이 예금 금리를 높여 대출금리까지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옵니다. 이 경우 취약 차주들의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죠.

부담에 비해 수혜자가 많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습니다. 금융사들이 예금보호공사에 내는 보험료를 통해 재원을 충당하기 때문에 한도 상향은 곧 은행의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은행의 보험은 결국 예금 금리 인하 등의 방식으로 전체 금융 소비자가 함께 나눠서 지죠. 그런데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22일 금융위원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 부보예금에서 5000만 원 이하 예금자 수 비율이 전체의 98.1%에 달합니다. 지금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대부분 예금자들은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건데요. 보호한도 상향의 혜택은 결국 1.9%인 고액 자산가나 법인 등에게만 돌아간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8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 편익을 고려한 신중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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