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家 여성들은 왜 반기를 들었을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3-03-13 16:06수정 2023-03-1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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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75년 만에 최초로 LG가(家) 상속 분쟁이 발발했습니다. LG그룹은 그동안 다른 재벌 가문과 달리 승계 과정에서 잡음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변의 중심에는 LG가 여성들이 있습니다.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의 배우자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죠. 상속회복청구 소송이란 재산 상속 과정에서 상속권을 침해당한 상속인이 회복을 청구하는 소송인데, 소송 결과에 따라 경영권 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LG 첫 상속 분쟁…“아름다운 이별? 전근대적 풍습!”

4년 전 끝난 상속 문제가 다시 불거진 건 LG가 세 모녀가 ‘유언장이 없으니 통상적인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상속이 이뤄져야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애초 상속 자체는 2018년 11월경 이뤄졌습니다. 당시 고(故) 구본무 전 LG 회장이 별세하며 ㈜LG 주식 11.28%를 포함해 약 2조 원 규모의 유산을 남겼는데요. 이 중 1조5000억 원가량의 경영권 관련 재산은 구광모 LG 회장에게, 나머지 5000억 원은 세 모녀에게 돌아갔습니다.

세 사람은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유언장이 있다고 믿고 이러한 재산 배분에 합의했는데,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법에 따라 상속분을 다시 나누자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죠. 법정 상속 비율에 따르면 배우자인 김 여사에게 1.5, 자녀에게는 1인당 1의 비율로 상속이 이뤄져야 합니다.

반면 LG 측은 “상속재산분할 협의서에 서명하고 적법하게 완료된 상속”이라고 주장합니다. LG는 10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온 LG 경영권 승계 룰(법칙)은 4세대를 내려오면서 경영권 관련 재산은 집안을 대표하고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그 외 가족들은 소정의 비율로 개인 재산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는데요. 실제로 LG는 이번 사건 전까지 1970년 2대로 취임한 구자경 LG 명예회장, 1995년 취임한 구본무 3대 회장에 이어 2018년 선임된 구광모 4대 회장에 이르기까지 잡음 없는 상속에 성공해 왔습니다. 이번 상속 또한 이러한 관례에 따른 것으로, 세 모녀도 2018년 상속 비율에 합의했다는 거죠.

이에 향후 소송에서는 세 모녀의 주장대로 관련 내용을 담은 유언장이 있는 것처럼 꾸민 정황이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LG 측은 “유언장이 없다는 것은 (세 모녀도) 이미 알고 있던 상황”이라며 “유언장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왜 그때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한 상황입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LG 제공/연합뉴스)
분란 없던 LG家 상속 문화…비결은 장자 위주 친족 공동 지배 구조

그간 LG그룹의 원활한 상속은 엄격한 장자 승계 원칙 덕에 가능했습니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세 모녀에 대해서도 LG 측은 “재산분할을 요구하며 LG 전통과 경영권 흔드는 건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는데요. 장자 승계와 이를 위한 경영권 상속은 LG그룹의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지탱해왔기 때문입니다.

경영권을 승계할 장자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전근대적이라는 비난에도 장자 승계 원칙 고수를 위해 입양까지 불사할 정도죠. 이러한 분위기에 LG가의 여성 구성원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 자체가 드물 정도입니다. 세 모녀의 반발이 한층 화제가 되는 까닭이기도 하죠.

이러한 장자 계승 원칙을 떠받치는 친족 중심 지배 구조도 LG 그룹의 주요 문화입니다. LG그룹의 지주사인 ㈜엘지의 지분 구조는 최대주주인 구광모 회장을 중심으로 친족들이 집단적으로 지분을 보유하는 특이한 구조를 지녔습니다. 2022년 기준 29명의 특별관계자가 41.70%를 차지하고 있죠.

LG연암문화재단과 LG복지재단 등 법인을 제외하면 회장을 중심으로 한 친인척 등 사주 일가 26명이 지주사 약 절반을 보유했습니다. 이들은 LG지주사를 통해 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등 70개 자회사 및 손자회사 등을 사실상 공동 지배하고 있는데요. 다른 그룹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구조는 장손 승계 구조를 뒷받침하며 분란 차단에 효과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승계 과정에서의 분란이나 쟁탈전이 잦은 다른 그룹들과 달리 LG그룹은 경영권 분쟁이 없었던 비결은 이러한 그룹 문화에 있습니다. 앞서 구인회 창업회장의 동생인 태회·평회·두회 형제 일가가 이끈 계열사의 LS그룹, 동업 관계였던 허 씨 일가의 GS그룹 등의 분리도 잡음 없이 이뤄져 재계에서는 ‘아름다운 계열 분리’의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상속권 분쟁으로 그동안의 전통이 깨진 셈입니다.

▲(뉴시스)
반기 든 세 모녀…LG그룹 ‘전통’에 변화 가져올까

소송을 제기한 세 모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LG그룹 지분에 대대적 변화가 예상됩니다. 일각에서는 경영권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세 모녀 주장대로 상속 재산을 다시 나누면 구광모 회장은 최대주주 자리를 위협받습니다. 법적 비율에 따르면 배우자인 김 여사는 3.75%를, 나머지 세 자녀는 2.51%씩을 상속받습니다. 이를 반영하면 구광모 회장은 기존 지분율 15.95%에서 지분율이 최대 9.7%에 그치게 되죠.

반면 김 여사의 지분율은 4.2%에서 7.95%로 증가합니다. 두 딸인 구 대표와 연수 씨의 지분율도 각 3.42%, 2.72%로 높아지죠. 세 사람의 지분율을 합하면 14.09%로 구 회장의 지분율을 넘어섭니다. 경영권 분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수준이죠. 다만 김 여사 측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로고스는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상속 절차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

구광모 회장은 법무법인 율촌을 선임하며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구 회장 측은 ‘적법한 상속’이었다고 주장하는데요. 상속회복청구의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경 상속분에 대한 이번 사건의 청구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죠. 민법 제999조는 상속권이 침해된 것을 안 날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었던 날부터 10년 이내 상속회복청구가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법원에서 청구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다만 합의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뚜렷한 특수한 경우에는 제척기간 경과 후에도 소송 청구가 인정됐던 전례가 있습니다. 이에 결말을 예단할 수는 없어 보이는데요. 세 모녀의 이례적 행동이 과연 LG그룹의 상속 전통을 깨고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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