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원한다는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몰카’ 논란에 좌초되나 [이슈크래커]

입력 2023-03-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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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최근 한 성형외과 진료실에서 인터넷 프로토콜(IP) 카메라 촬영 영상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이 커지고 있습니다. 3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사건이 발생한 성형외과에서는 “현재 영상과 사진이 유포되는 환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진료가 성형외과라는 이유로 폄훼되고 비난받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영상 유포로 인한 2차 피해 우려도 나오고 있죠.

이런 상황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 등은 2021년 8월 국회를 통과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시행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환자들의 민감한 건강 정보나 신체 부위 노출, 수술 장면 등이 유출되면 국민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관련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2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9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성범죄, 유령 의사 사건 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국민은 오랫동안 해당 법안의 실행을 기다려왔는데요. 일각에서는 진료나 수술 영상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수술실 CCTV 설치, 다시 논의해야 걸까요.

진료실 IP카메라 영상 유출 논란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여성 환자들의 진료 장면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촉발됐습니다. 해당 병원은 2017년 진료실, 상담실, 심전도실, 수술실 등에 IP카메라를 설치·사용해왔는데요. 병원 측은 IP카메라들이 병원 내 긴급 상황 발생 시 빠른 대처를 위한 모니터링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유령 의사 등에 대한 환자들의 우려가 커 이를 해소하려는 방안이라고 했죠.

그런데 카메라 영상 일부가 해킹으로 외부에 유출됐습니다. 불법 음란물 사이트 등에 영상이 유포되며 일종의 도촬 영상으로 소비된 건데요. 영상은 피해자의 지인이면 식별할 수 있는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병원 측은 해당 영상들이 불법 음란물 사이트 등에 유포되며 피해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실제로 네이버 지식인 등에는 해당 영상을 음란물 사이트에서 시청했다며 처벌 가능성을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사건 관련 유튜브 영상들에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죠.

관련 영상 유포와 시청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합니다. 병원 측은 이에 대한 강력 대응을 예고했지만, 피해자들은 영상이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란 생각에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1일 IP카메라 해킹, 사생활 엿보고 불법촬영한 피의자 10명 검거 브리핑 중인 정석화 사이버수사1대장(뉴시스)
IP카메라와 CCTV, 뭐가 다른데?

영상 유출이 가능했던 건 해당 병원이 IP 카메라를 설치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폐쇄회로(CC)TV와 유사하지만, 작동 방식이 다릅니다. CCTV는 폐쇄회로로 동작해 유·무선으로 밖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영상 열람을 요청한 열람권자만 열람이 가능하죠. 영상의 무단 유출 및 복사도 어렵습니다.

반면 IP 카메라는 유·무선 인터넷에 연결돼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거나 시청할 수 있습니다. 외부 접속이 차단된 CCTV보다 저렴하고 설치도 간편하죠. 다만 보안에 취약하고 해킹이나 내부 유출도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앞서 2018년 11월에도 IP카메라가 해킹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해킹범들이 반려동물 상태 확인을 위해 집 안에 설치한 IP 카메라를 해킹해 260여 대의 IP 카메라에 접속했죠. 이들이 유출한 영상은 영화 700편 분량에 달합니다. 당시 피해자는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우며 혼자 사는 여성이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성형외과도 IP카메라를 사용했는데요. 병원 측은 IP카메라를 CCTV로 교체하기 위해 설치 관련 사항을 보건소에 신고하고 공사 견적을 낸 상태였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병원 외에도 저렴하고 다루기 편한 IP 카메라를 사용하는 병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시스)
수술실 CCTV는 해킹 우려 없어…진료실 문제는 여전

이번 사건의 발생으로 9월 시행을 앞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로 의료계에서 의견이 나옵니다.

병협은 “그동안 수술실 CCTV 설치의 부작용과 영상 유출 우려 등을 지적하며 설치 의무화에 반대했지만, 국회는 환자안전을 이유로 입법화를 강행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시행을 전면 중단하고, 의료인과 환자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는 방안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의료기관은 의료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관리·감독을 충실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종 수사와 소송에 휘말릴 것”이라며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은 영상 유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보안시스템까지 구축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죠.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법안 제정 당시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 정책참여 채널인 ‘국민생각함’을 통해 해당 주제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한 결과, 1만 3667명(97.9%)이 찬성한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죠. 반대 의견은 292명(2.1%) 였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진료실 등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수술실 CCTV 법안과는 결이 다릅니다. 애초에 의료법은 수술실에 설치하는 카메라를 CCTV로 정하고 있어 해킹 우려가 없기도 하죠.

그렇다고 영상 유출 우려가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의협이 “(영상이) 저장되는 순간부터 유출의 위험에 노출되고, IP 카메라가 아닌 CCTV를 설치하더라도 영상의 도난·분실·유출 등의 위험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듯 영상이나 카메라 자체가 도난당하거나 내부인에 의해 유출되는 경우에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죠.

진료실 등에 설치된 카메라는 여기에 더해 해킹의 위험까지 안고 있는데요. 의료법 적용을 받는 수술실과 달리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보호법은 CCTV 촬영에 환자 별도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카메라 종류 등에 관한 규정은 없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시행을 앞두고 하위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마무리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행령에 CCTV 설치 기준과 촬영 범위, 수술실 내 CCTV 촬영 거부에 대한 구체적 기준, 네트워크 분리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될 전망인데요. 진료실 등 의료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논의도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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