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플랫폼] 아동학대와 국가의 무임승차

입력 2023-03-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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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람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월 7일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되는 12세 남자 아동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교육부는 보건복지부 및 경찰청과 함께 아동학대 조기발견 및 보호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미인정 결석 학생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하였다. 2013년 10월 24일 이서현 어린이가 아동학대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지 10년이 되는 2023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2020년 6월 9세 남자 어린이와 같은 해 10월 16개월 여자 유아가 같은 이유로 사망한 후 한국사회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허탈감을 낳게 하는, 사건과 대응의 사이클이라 하겠다. 낯설지 않고 익숙한 대응조치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필자에게 무감각하게 다가왔었다. 그러나 아동을 사랑하고 아동복지에 헌신하는 실무자와 학생들을 떠올리자 달라졌다. 아동학대 사망을 예방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허탈감과 무기력이 가장 큰 악영향이 아닐까. 과연 아동학대 사망 예방은 한국사회가 도전하기에는 무모한 사회적 위험인지를 냉정하게 성찰하고 아동학대 사망률 제로를 위한 노력을 방해하는 요인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사건과 대응의 사이클

2013년 이서현 어린이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아동복지 및 인권단체들과 민간 전문가, 그리고 남윤인순 국회의원실은 약 2개월에 걸쳐 피해자의 교육과 의료 등 중요한 순간에 있었던 33명을 인터뷰하고 분석한 결과를 이듬해 1월 발표하였다. 그러나 최종 보고서는 당시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만 전달되었고 한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학대는 최소 3년 이상 지속되었고 한 달의 병원 외래치료와 12일의 입원, 그리고 유치원 재원 당시 교사가 신고할 정도의 신체적 학대가 저질러졌으며, 정서적 학대와 방임이 없었을 수는 없다고 예측된다.

한국사회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부터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 2020년 지방정부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 2023년 아동학대 심층사례관리 전문성 강화 등 고인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동학대 사망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조앤 트론토(Joan Tronto)의 ‘돌봄의 무임승차’ 개념은 아동학대 사망률 제로를 방해하는 원인들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트론토에 따르면 특권적 무책임과 냉정한 무관심은 돌봄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무임승차라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영속시킨다. 폭력과 죽음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일보다는 경제성장 및 시장경쟁력 강화와 외교안보가 중요하다는 발전주의적 국가 이데올로기는 아동학대 예방과 보호에 대한 무책임을 조장한다.

민간 의존…양육자 일탈만 탓해서야

적정한 아동보호 서비스의 양과 질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정적 행정적 지원에 소극적인 정부부처와 국회의 의사결정자들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상담전문가, 그리고 아동복지전담공무원에게 과중한 업무부담과 열악한 보상 수준에서 오직 열정과 사랑으로 아동학대 예방과 보호에 헌신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직업 소명을 내세운 무임승차다.

또한 일명 ‘이서현 보고서’ 위원회 사례에서 보듯이 민간 아동복지기관과 전문가,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성에만 의지하는, 정부의 민간부문에 대한 무임승차도 있다. 또한 아동학대 고위험 가정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냉정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우연 또는 운명에 기대하는 무임승차도 들 수 있다. 이는 양육태도와 기술을 익힐 기회와 자원이 부족하고 양육부담을 덜어줄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고위험 가정에 대하여, 오롯이 양육자의 일탈만을 탓하도록 내버려두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끝으로 아동은 여전히 부모의 통제권 범위에 있으며, 아동학대의 문제는 가정사에 불과한 것이라는, 성인남성 중심의 공사(公私) 구분 이데올로기를 통한 무임승차도 있다.

정부는 올해 10월 아동학대 대응체계 기반 조성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사람일 것이다. 학대신고, 접수, 조사, 계획수립, 의료, 심리, 법률, 양육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동의 학대피해 예방과 회복, 그리고 건강한 발달과 완전한 참여를 위한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정부 예산 지출을 소홀히 한다면 아동학대 대응체계 기반은 영원히 미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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