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대화하는 로봇, 챗GPT

입력 2023-02-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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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오래전 일본 노년층의 삶에 대한 취재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생활하고 자식 키우느라 평생 고군분투했지만, 늘그막에 곁에 남은 건 말하는 고양이(?)로봇이 전부’라는 게 골자였다. 기사를 접했던 당시엔 ‘삶이 참 쓸쓸하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삶의 끄트머리를 인간이 아닌 로봇과, 그것도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입력된 몇 마디 말이 전부인 기계와 함께하는 게 마음 아팠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전자기기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면서 기계와의 대화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말만 하면 티브이를 켜고 끄는 건 물론 끝말잇기도 해준다. 날씨나 시간 같은 소소한 정보의 제공은 말할 것도 없고 우울한 날 들으면 좋은 음악도 틀어준다. 아직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다 똑 부러지게 하는 AI를 만나는 건 시간문제다. 곧 개인 비서나 생활 도우미를 넘어 ‘친구’ 역할까지도 넘보려 하지 않을까.

“당신과 정서적 교감은 할 수 없어요”

최근 화제몰이 중인 채팅 로봇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를 써 보니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아들이 링크를 보내고, 자주 가는 SNS에도 이 로봇과의 대화 내용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호기심이 발동해 나도 말을 걸어봤다. ‘심심해! 너와 얘기하고 싶어’라는 의도가 담긴 ‘지금 뭐해?’라는 말을 던졌다. 그랬더니 “자신은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이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한다(do)’란 행위는 하지 않고 다만 너와 같은 사용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려고 여기 있다”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당신과 정서적 교감은 할 수 없습니다’란 의미로 들린다. 이번에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생각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답변을 보니 정리의 신이 따로 없다. 중요 포인트들만 콕콕 짚어 알려준다. 소요 시간도 그렇고 여러 측면에서 키워드 검색보다 편했다.

이 친구와 좀 더 친해질 요량으로 작동 원리를 찾아보니 ‘셀프 어텐션(self-attention)’이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이 낯선 용어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챗GPT란 이름을 분석해 봤다. ‘Chat’은 대화를 뜻하는 영어 단어다. 이 로봇과 대화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Generativ’는 생성적인, ‘Pre-trained’는 사전학습된, 그리고 ‘Transformer’는 트랜스포머 모델을 뜻한다. 정리하면 이 인공지능 모델은 막대한 양의 텍스트를 사전학습했고, 이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즉 자연어를 이해하고 대화를 생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트랜스포머는 언어 모델로 우리의 기대와 달리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트랜스포머’ 속 변신로봇 장난감과는 하등 상관없다. 이 모델은 번역기 역할도 하고 문장 내 누락된 단어를 예측하기도 한다. 일례로 ‘나는 오늘 학교에 ( )’란 입력 데이터가 있으면 트랜스포머는 사전학습을 통해 괄호 안에 맞는 말로 ‘간다’ 혹은 ‘갔다’란 단어를 추천한다. 이때 셀프 어텐션이란 메커니즘이 사용된다. 다시 한번 ‘나는 오늘 학교에 갔다’란 문장을 일례로 들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문장이 트랜스포머에 입력될 때는 ‘나는’ ‘오늘’ ‘학교에’ ‘갔다’로 쪼개져 들어간다. 이때 이렇게 의미를 갖는 최소 단위 단어들을 입력 시퀀스라 부른다. 이 시퀀스들이 트랜스포머에 의해 ‘의미 있는’ 문장으로 출력되려면 각 단어 간의 상호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단어들을 다양하게 조합했을 때 어느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지 따지는 작업이 필요한데 여기에 셀프 어텐션이 적용된다. 그래서 이 기술을 설명할 때 ‘의미를 찾는다’란 다소 문학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알파고가 바둑을 바꿨듯, 인간 대화도…

사실 원리를 몰라도 챗GPT를 이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이해가 쉽지 않은 챗GPT의 작동 메커니즘을 굳이 파고 들어가 본 건 또 다른 궁금증 때문이다. 이 대화형 로봇이 인간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이 사람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떤 점이 같은가 하는 질문이다. 언어 습득에 대한 내 지식이 너무 짧아 불행하게도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하긴 어렵다. 언어 습득 능력 면에서 정적인 언어 데이터에 의존하는 인공지능이 새로운 정보나 상황에 대한 이해력까지 갖춘 인간의 수준까지 오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화 가능한 인공지능은 사람 사이의 소통방식에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해 우리의 언어 습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마치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둑을 두는 알파고가 바둑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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