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밌기까지 하세요?…‘야신’ 김성근, 이제는 ‘예능신’ [요즘, 이거]

입력 2023-02-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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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그가 손에 공을 들면, 배트를 든 선수들이 그를 따릅니다. 그가 손에 배트를 들면 글러브를 낀 선수들이 순서를 기다리죠. 지옥의 ‘펑고(야수가 수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트로 쳐 준 타구)’와 ‘특타(타자가 정규 훈련 시간 외에 진행하는 타격 훈련)’. 두 지옥으로 인도하는 ‘야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바로 김성근 감독 이야기입니다.

김.성.근. 이름 그 자체만으로 베테랑 야구선수들을 떨게 하는데요. 지난달 9일 방송된 JTBC ‘최강야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죠. 김성근은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한 이승엽에 이어 두 번째 ‘최강 몬스터즈’ 감독으로 등장했습니다. 최강 몬스터즈는 은퇴한 프로 야구 선수들이 모인 팀으로, 김성근의 제자들이 여럿 포진돼 있었는데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몬스터즈 선수들은 김성근의 등장에 ‘동공 지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당황한 얼굴과 굳은 몸은 숨길 수 없었죠.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그리곤 이내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에게 떨어진 두 지옥. ‘펑고’냐 ‘특타’냐 만을 선택할 수 있는 김성근표 훈련 속으로 말이죠.

“붙여 쳐라”, “비잉 가지 말고 퍼엉 때려”, “요(?) 갖다 놓고 해야 한다”, “그런 느낌이야”

네? 도대체 어떤 느낌이죠? 의성어가 난무하는 김성근의 특타 교실. 부임하자마자 김성근은 연이어 타자들을 줄 세웠는데요. 수업에 임한 타자들은 마치 암호와 같은 조언을 그저 몸으로 새겼습니다. 일명 ‘김성근이 손 본 아이들’인 서동욱, 최수현, 박찬희는 부임 첫 경기부터 안타를 몰아쳤는데요. 특히 박찬희는 몬스터즈 입단 이후 10타수 무안타의 아쉬운 모습을 뒤로하고 1홈런 2루타라는 기록으로 ‘야신 매직’을 입증했습니다.

김성근 감독 부임 소식에 몬스터즈 팬들은 기대감에 열광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는데요. 최강야구는 예능이기 때문이죠. 선수들의 실력은 향상되겠지만, 예능으로서의 ‘재미’는 이제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따라왔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최강야구 제작진도 “그동안 예능 최강야구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로 거듭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그 예상은 단번에 빗나갔습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야신’을 너무 몰랐던 거죠.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은 모든 말이 그저 웃음으로 마무리되는 엄청난 티키타카를 보여줬는데요. 결코, 길게 얘기하지 않는 김성근. 짧디짧은 문장이 그저 ‘예능신’의 강림 그 자체였죠.

최강야구의 해설로 활약하고 있는 김선우와의 대화는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었는데요. 야구 해설위원으로 분하고 있는 김선우는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입니다. 투수진이 약한 몬스터즈를 분석한 김성근은 김선우를 보자마자 “왜 유니폼 안 입어?”라며 순식간에 주전 투수로 만들어버렸죠.

해설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김선우에게 김성근은 “너 던지면, 내가 해설할게”라며 엄청난 빅딜을 하기도 했는데요. 애써 해설자의 본분을 다하려는 듯 6일 방송된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1 마지막 경기 전망을 묻는 김선우의 태도를 지적하며 “내년엔 너 안 쓴다”라며 쐐기를 박아버렸죠.

적장으로 만난 이승엽에게는 “코치는 뭐 들고 왔는데, 감독이 빈손으로 오냐”고 물어 이승엽을 굳어버리게 했는데요. 이승엽의 당황한 모습을 처음 본 제작진은 그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성근의 넘치는 예능감은 그의 ‘애제자(?)’와 함께할 때 그 빛을 발했는데요. 절이 싫어 떠난 중에게 다시 절이 찾아왔다는 웃지 못할 스토리의 주인공 정근우와의 만남이었죠. SK와이번스, 한화이글스에 이어 최강 몬스터즈까지 3번째로 김성근과 만난 정근우에게 팬들 또한 ‘정근우의 움직이는 절’이라는 웃픈 명패를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한화이글스 시절 정근우의 ‘펑고’ 사진이 현재까지 회자되는 만큼, 그 지옥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답게 곧바로 ‘불꽃남자 정대만’ 저리 가라 할 투지력을 보여줬는데요. “못 치면 특타다”라는 엄청난 압박감을 이겨내며 죽어라 뛰는 정근우를 보면서 팬들은 안쓰러움과 재미를 동시에 느꼈죠. 특히 재일교포 출신 김성근의 다소 어려운 말투를 바로 알아듣는 정근우가 ‘통역사’로 나선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선발투수 유희관에게 건넨 김성근의 말을 내야진 모두 알아듣지 못했는데요. 정근우만이 유일하게 “놀고 앉았다고”라며 통역하며 폭소를 자아냈죠. 김성근이 마운드에 올라서면 동료들은 바로 “근우야 감독님 나오신다”며 통역사를 찾았습니다.

정근우를 위협하는 또 다른 애제자가 있다면 투수 심수창인데요. 한화이글스에서 김성근과 함께한 이력이 있는 선수죠. 아쉬운 경기력으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는 심수창은 오로지 예능인으로 함께한다는 소리도 나오는데요. 김성근을 만나며 시너지(?)가 팡팡 터졌습니다.

어깨가 아프고, 구속도 느리고, 오버핸드도 어려운 심수창에게 “속도는 안 나오고 소리만 친다”고 일침하며 “안되면 왼손으로 던져”라는 묵직한 한 방을 날렸는데요. 평생을 우완투수로 산 심수창에게 좌완투수로 나서라는 그의 조언은 동료들도 쓰러지게 했죠.

두산베어스와의 경기에선 심수창을 트레이드할 요량으로 이승엽을 만나기도 했는데요. 이미 눈치챈 이승엽이 “심수창은 필요없다”고 말하자, 뜨끔한 듯 “왜 요새 잘 던져”라며 목소리가 작아지는 모습도 놓칠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회가 거듭되며 차츰 주춤했던 최강야구의 시청률은 김성근 등장 이후 반등했는데요. 6일 방송은 닐슨코리아 기준 시청률 3.5%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죠. 커뮤니티 또한 김성근이 예능까지 휩쓴다며 ‘야신’의 엄청난 존재감에 들끓었습니다.

김성근은 8일 tvN ‘유퀴즈 온더 블럭’에도 출연했는데요. 김성근은 오로지 야구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삶과 자신에게 쏟아졌던 비판에 대한 생각을 덤덤히 얘기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다시라기보단 야구 인생을 연장하고 싶다”며 답해 뭉클함을 자아냈는데요. 현재는 100점 만점에 70점도 되지 않는다며, 긴 야구 인생에도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지도자’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80살의 노장으로만 불리기엔 우리가 너무 몰랐던 ‘야신’.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게 되는 반가움은 감출 수가 없는데요. 남은 30점을 채우는 김성근의 하루하루를 ‘웃음 가득’ 마주하는 시간이 부디 지속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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