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비하인드] 간호조무사는 어떻게 졸피뎀을 손에 넣었나

입력 2023-02-12 09:30수정 2023-02-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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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만 명 당 마약 사범 수 31.2명. 한국은 이제 ‘마약위험국’으로 불린다. 어두운 그림자는 나이·성별·직업을 불문하고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마약을 취득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마약 사건의 뒷이야기를 파헤쳐 마약이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짚어본다.

평소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

서울 강남구에서 모발 이식ㆍ피부과 진료를 하는 A 의원 직원들은 간호조무사 B 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B 씨 스스로 수면장애가 있어 졸피뎀을 먹었다고 말한 적 있었기에, 때때로 나타나는 이상한 행동을 졸피뎀 때문으로 여겼다.

졸피뎀은 불면증 환자들이 종종 찾는 약품이다. 수면장애 치료를 위해 성인에게만 사용한다. 마약류로 분류돼 있고 의존성도 강한 편이다. 과도하게 복용할 경우 일정 기간 행동 기억하지 못하거나 비정상적인 생각과 행동, 환각, 우울증 악화 등 부작용이 따른다.

B 씨에겐 다른 사람에게 볼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A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C 씨와의 묘한 기류. 직원들은 "B와 C가 매우 친밀해 보이긴 했어요. 연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병원 내에서도 뭔가 둘 만의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둘의 관계는 실제로 ‘뭔가’ 특별했다. 간호조무사 B 씨와 의사 C 씨는 4년 정도 연인관계로 만나다 헤어진 사이. 헤어진 후 C 씨는 B 씨에게 A 병원에서 근무하라고 권유했고 연인관계였던 둘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이렇게 함께 일하게 된 두 사람은 머지 않아 나란히 재판을 받는다. 졸피뎀 때문이다. B 씨는 2020년 1월, C 명의 처방전 양식으로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스틸녹스 약품 84정을 샀다. 이후 같은 해 7월까지 12회에 걸쳐 졸피뎀을 매수했다. 마약류취급자가 아님에도 C 명의 처방전을 사용해 졸피뎀을 기재한 처방전을 발급받고 약국에서 구매했다.

"B가 오랫동안 수면장애를 이유로 졸피뎀을 복용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A 병원 입사하기 전에 한 차례 졸피뎀을 처방해준 기억도 있고요. 평소 진료 볼 때 환자들이 불면증을 호소하면 졸피뎀을 처방해주기도 했는데 흔한 케이스는 아니에요. 직원들이 잠을 못 잔다고 하면 가끔 졸피뎀을 처방해주기도 했죠." (C 씨 경찰 진술 중 일부)

(게티이미지뱅크)

처방전을 부실하게 관리한 탓에 사건이 커진 측면도 있다. C 씨는 평소 자신 명의로 미리 인쇄된 처방전을 직원들에게 보관ㆍ관리토록 하면서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구체적 의약품명과 투약량 등을 직원들이 기재해 내주게끔 했다. B 씨는 C 씨 진단이나 지시 없이 병원 내 보관된 공(空) 처방전을 자신에게 졸피뎀 성분 스틸녹스를 처방하는 것으로 기재해 발급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C 씨는 사전 예방 교육을 진행하거나 공 처방전 보관함이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박설아 판사는 B 씨와 C 씨에게 각각 벌금 700만 원,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양형 이유를 조곤조곤 읊었다.

"B 씨는 범행 방법, 구매한 스틸녹스 양 등을 고려하면 죄책이 무겁고, C 씨는 고용주로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주의와 감독을 다 하지 않아 죄책이 가볍지 않다. 다만 B 씨가 졸피뎀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재범하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있고, C 씨는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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