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해외는 승소했는데…국내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집단소송 패소

입력 2023-02-0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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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업데이트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소비자 측 "항소 검토"

▲2020년 12월 16일 독일 뮌헨에 위치한 애플 매장의 로고가 빛나고 있다. (AP/뉴시스)

애플이 구형 아이폰 성능을 고의 저하시켜 신형 아이폰 구매를 유도했다는 의혹에 관해 국내 소비자 6만 명가량이 애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소비자가 겪은 불편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재판장 김지숙 부장판사)는 2일 아이폰 이용자 6만여 명이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국내 소비자 "애플, 고의로 성능 저하시키고도 알리지 않아"…127억 원 청구

2017년 국내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애플이 자사 소프트웨어 iOS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성능을 떨어뜨리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애플은 배터리 노후화로 전원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성능을 저하시켰다고 인정했지만 소비자들은 신형 아이폰 구매를 유도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결국 2018년 애플을 상대로 "아이폰 성능 저하에 따른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소장을 제출했다. 같은 취지의 소송이 연이어 제기돼 원고 6만2806명, 청구 배상금 127억여 원에 달했다.

▲아이폰 SE. (애플 홈페이지 캡처)

재판부 "업데이트로 인한 현상이라는 증거 없다" 애플 주장 받아들여

재판부는 애플에 배상 책임을 묻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들은 iOS 업데이트로 아이폰이 본래 성능보다 40~88%로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IT 제품 평가사이트 확인 결과와 성능 실험 영상 등을 제시했다. 사용하는 아이폰이 멈추는 현상은 물론 터치해도 반응하지 않는 현상, 화면 가로세로 전환 불능 현상 등을 영상으로 찍어 제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성능이 저하됐는지 확인하기 위한 객관적, 실증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해당 실험들이 어떤 조건과 방법으로 진행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성능이 저하됐다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오류들이 업데이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대신 해당 업데이트가 아이폰의 전원 꺼짐 현상을 막는 목적이었다는 애플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이폰이 작동하려면 배터리에서 순간적으로 전력을 가져와야 하고, 배터리가 오래되면 전력이 떨어져 갑작스레 전원이 꺼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원이 꺼지는 것보다 일부 성능을 제한하더라도 전원이 꺼지지 않는 게 사용자에게 더 유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해당 업데이트가 반드시 손해를 가져온다고 볼 수 없다"며 "해당 업데이트는 최고 성능이 필요한 일부 기능만 제한한다. 전화, 인터넷검색 등 통상적 사용에서는 별다른 성능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 회사 로고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ㆍ칠레서는 소비자 승소…소비자 측 "항소 검토할 것"

유사한 사례를 두고 미국에서는 2020년 총 1억1300만 달러, 한화 약 1300억 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칠레에서도 2021년 총 25억 페소(약 38억 원)를 배상키로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외 사례와 이번 재판은 성격이 다르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재판부는 "미국과 칠레는 애플과 소비자들이 합의로 소송을 종결한 것"이라며 "장기간의 집단 소송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시간 부담을 줄이고 분쟁을 조기 종료하기 위한 애플의 경영적 판단"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미국과 칠레에서는 해당 업데이트로 아이폰 성능 저하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며 "두 나라의 재판 결과도 애플의 고의 성능 저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한누리는 이날 선고 직후 "승패와 무관하게 집단 소비자 피해 구제에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판결문을 검토해 항소 및 후속 대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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