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따뜻한 봄에는 감기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입력 2023-02-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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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과학칼럼니스트

해가 바뀌자마자 첫 번째 달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2월 달력을 펴니 반가운 글자가 눈에 쏙 들어온다. 2월 4일 ‘입춘’. 계절이 달력을 보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봄이 온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이제 한동안은 감기에 걸리지 않겠지!

2022년은 필자에게 ‘여러 호흡기 바이러스와의 사투’로 기억된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연초, 코로나19에 처음 감염됐다. 만 두 살이 채 안 된 아이는 이틀 만에 다 나아서 밖에 나가자고 보챘지만, 어른들은 격리기간 내내 코 막힘과 호흡곤란, 기침,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필자는 격리기간이 지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감기약을 먹어야 했고, 후유증으로 비염이 생겼다.

힘겹게 얻은 자연면역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가을 중반쯤 기온이 떨어지자 재감염된 것이다. 다른 가족들은 거의 무증상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필자는 비염이 심해지며 한 달쯤 고생했다.

증상이 나아질 무렵, 이번에는 아이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에 걸렸다. 기침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기관지염, 폐렴으로 이어져 결국 4일이나 입원했다. 퇴원할 때쯤 아이는 건강해졌지만 옆에 붙어있던 필자가 감염돼버렸다. RSV는 코로나19나 그 어떤 감기보다도 고통스러웠다. 한 달 이상 머리가 무거웠고 코와 목에 녹말풀이라도 걸려 있는 듯이 답답했다.

연말에는 독감에 걸렸다. 누워서 세어보니 2022년 한 해 동안 감기약을 먹은 기간이 3분의 1쯤 되었다. 참으로 억울했다. 반면 당시 유행했던 파라인플루엔자바이러스나 사람 메타뉴모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새해에는 호흡기 바이러스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따스한 봄을 기다렸다.

이처럼 지난 한 해 코로나19 외에도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들이 악랄하게 유행했던 원인은 ‘일상 회복’과 관련이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초중반에는 전파를 막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이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잘 지켰다. 하지만 지난해 일상 회복으로 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와 함께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이 최근 몇 년간 감기와 독감에 거의 걸리지 않은 까닭에 면역력이 생기지 않아, 요즘 감기와 독감은 더 독하다.

지금보다 기온이 따뜻해지면 정말로 호흡기 바이러스에 덜 감염될까? 이론상 바이러스는 고온에서는 잘 살아남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단백질 껍데기 또는 인지질 막이 유전물질을 품고 있는 구조인데, 고온에서는 이것들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즉, 바이러스는 고온보다는 저온에서 활동성이 커진다. 감기와 독감이 여름보다는 겨울에 많이 유행하는 이유다.

최근 우리 면역계 자체도 저온에서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알레르기 및 임상면역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호흡기바이러스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콧속 면역계의 능력이 추운 날에는 절반으로 줄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안이과병원 연구팀은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리노바이러스가 콧속에 들어갔을 때 어떤 면역반응이 일어나는지 세포 수준에서 관찰했다. 그 결과 콧속 세포가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소포’를 내보내는 것을 확인했다. 소포는 세포막이 점액을 두르고 있는 주머니로 그 안에는 세포나 바이러스를 없애는 여러 가지 면역물질이 들어 있다. 콧속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소포는 자기가 세포인 척 바이러스를 유인해 죽인다. 콧속 세포가 소포를 많이 만들어 내보낼수록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낮아진다.

연구팀은 기온이 떨어지면 콧속 세포가 소포를 내보내는 능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실험으로 알아봤다. 그 결과 건강한 사람이 약 4.4도 정도의 추운 환경에서 15분간 머물면 콧속 체온이 5도가량 떨어졌고, 콧속 세포가 분비하는 소포의 양이 약 42% 정도 줄었다. 심지어 소포 안 점액에 들어 있는 항바이러스 단백질도 손상됐다. 추운 날씨에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콧속 면역계의 능력이 떨어져 감염 위험이 커진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감기 바이러스 외에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기온에 따라 콧속 면역능력이 달라지는지 추가 연구를 할 계획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난 3년 동안 경험했듯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따뜻한 날씨에도 그다지 약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운 여름에도 코로나19는 끊임없이 새로운 변이가 나타났고, 일 년 내내 더운 나라에서도 수많은 감염자가 나왔다.

지난달 30일부터 국내에서도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이것을 반갑게만 맞을 수 없는 이유다. 마스크에서 해방되어도 될까? 진정한 ‘위드 코로나’ 앞에서 고민이 생겼다.

참고자료 https://doi.org/10.1016/j.jaci.2022.09.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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