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거래처 갑질에 속수무책”…정유업계, 휘발유 원가 공개에 반발

입력 2023-01-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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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하폭 축소 영향으로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이 2주 연속 올랐다. 지난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월 둘째 주(8∼12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리터)당 1천562.0원으로 전주보다 8.5원 올랐다. 서울 시내에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휘발유 원가를 공개하라는 여론에 정유업계가 반발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2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27일 총리실 규제개혁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시행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정유사 휘발유·등유·경유 정보공개 및 보고 범위를 광역시·도와 대리점·일반 주유소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는 전국 평균 정유 도매가만 공개하고 있다.

이에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는 개정안이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있고 가격 상승을 유발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국민 여론상 수익구조를 공개했지만, 실익은 해외 수요처에서 거두게 된다는 주장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 A씨는 “예를 들어, 원가 이하 공급을 원하는 등 생산단가와 물량을 다 알게 된 해외(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정유사 등 )수요처에서 갑질하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라며 “수익구조를 다 오픈해버린다면 국내 정유사가 거래 시 (물량을 선점한 데 대한) 잠정적 프리미엄을 못 받는가 하면, 다른 정유사들이 정유사의 물량을 예측해 맞대응해버리는 경우가 생기면서 불리한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절반 이상 해외 판매하는데, 단기 거래처는 원가 이하의 밑지는 거래를 원할 수도 있다. 또, 장기 계약의 경우 그동안의 모든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정유업계 관계자 B씨는 “치열하게 경쟁이 이뤄진 시장에서 벌어진 가격 자체를 갖고 정유사가 공급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정유사가 어떤 구조를 갖고 어떤 물량을 내는지 속속들이 공개된다면, 해외 정유사들이 국내 정유사를 상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맞춤형으로 해외 정유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어느 업종도 오픈하지 않는데 왜 정유업계만 오픈하느냐란 업계 입장도 있다.

이윤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휘발유 원가 공개가) 영업비밀이라고도 하는데, 경제학 관점에서 법으로 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기업 경영 환경이 수시로 바뀌어 신축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법으로 정해놓으면 원론적으로 기업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어 “지침이나 권고라면 이해되지만, 이를(휘발유 원가 공개) 법으로 한다는 건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라며 “현 정부의 큰 원칙이 민간기업의 자율성인데, 큰 틀에서 원가 공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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