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동네 엿보기] 1. 프란시스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

입력 2023-01-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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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 이상아트(주) 대표이사,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장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으로)을 사유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오래된 작품이나 전시를 보는 이유는 어떤 즐거움이나 감동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같은 미디어를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칼럼은 이슈가 되는 예술 작품을 통해 사회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전달해 주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쉽고 재밌지만 유의미한 메시지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1. 프란시스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프란시스코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1819~1823, 143.5x81.4cm,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비롯해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작품

최근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종영되었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재벌의 생활방식과 인생 2회차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복수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특히 KAL기 폭파사건, IMF 외환위기, 닷컴 버블 등 1990년대 실제로 일어난 현대사를 그려내면서 드라마를 평소에 보지 않는 중년 남성들도 관심을 가지고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극 중 갤러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프란시스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1819~1823)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드라마상에서 아버지의 권력에 도전하는 아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사실 해당 작품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 작품이다. 영화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체코 출신 영화감독 밀로스 포만이 2008년 제작한 영화 ‘고야의 유령’에서 등장했고, 2016년 방영한 MBC 수목드라마 ‘W’는 이 그림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

원작품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다. 드라마를 제작한 jtbc가 프라도 미술관에서 원작품을 대여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드라마에선 이 작품의 고해상도 파일로 출력한 복제품으로 연출했을 거다. 통상적으로 저작권법상 저작권은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보호가 된다. 1828년에 세상을 떠난 고야의 작품이기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작품가는 얼마나 될까? 스페인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기에 작품가가 책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가격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고야의 작품 중 최고가는 유화로 그린 ‘투우’(1824)로 30년 전인 1992년에 소더비 경매에서 450만 파운드(약 68억 원)를 기록했다. 미술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화가의 작품은 값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작품의 유명한 정도를 고려해볼 때 최소 100억 원은 넘지 않을까 추정해본다.

세상의 최고 권력자 아버지에게 도전한 아들의 이야기

권력 그 영원불멸함을 원했던 크로노스!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고, 자신의 다섯 명의 자식을 삼켜 죽이다

고야의 이 작품은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는 크로노스의 모습을 광기 있게 그려냈다. 크로노스는 로마 신화에서 라틴어로 ‘사투르누스’라고 부르기에 간혹 다른 작품에서는 사투르누스로 명기되어 있기도 하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이다. 우라노스는 죽어가면서 크로노스에게 “너도 네가 낳은 아이에게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래서 크로노스는 자신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잡아먹는 것이다.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태어나는 자식들을 잡아먹는 아버지에게서 인간의 본성에 있는 광기와 마주한다. 그림에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훗날 신들의 제왕인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태어난다. 크로노스는 제우스에게 패하면서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루벤스, ‘아들을 삼키고 있는 크로노스’, 1636~1638, 182.5x87cm,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그리스나 로마 신화부터 인간성, 세대 간의 갈등, 또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라는 상징성 등으로 이 작품은 여러 화가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졌다. 고야에 앞서 같은 신화를 주제로 그린 화가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이다. 루벤스가 바로크풍으로 그린 ‘아들을 삼키고 있는 크로노스’(1636~1638)는 고야의 작품보다는 덜 격정적이지만, 차분한 필치로 그려졌다. 심장이 있는 가슴을 뜯기는 아이의 놀란 표정이 강렬하다. 고야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그림을 그렸다. 둘 다 자식을 잡아먹는 내용을 충실히 다루고 있으나 다른 화풍으로 작업했다.

뺏고 뺏기는 부자간의 권력다툼, 크로노스 콤플렉스

많은 화가가 그렸던 ‘크로노스’ 작품에서는 부자간의 갈등이 그려진다. 아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아버지를 표현할 때 심리학적으로 ‘크로노스 콤플렉스’라고 일컫는다. 아버지가 아들의 존재와 가능성을 무시하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강압하는 것을 말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비슷하기도 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와는 아주 다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필연적일까? 간혹 부자간의 갈등으로 인한 끔찍한 범죄 소식도 들려온다. 새해에는 부자 사이를 비롯해 가족 간의 평화를 빌어본다. 그리고 고야의 작품은 앞으로 또 어떤 드라마와 영화에서 등장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jtbc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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