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부터 인공위성까지…수면모드 뚫는 재난문자, 꼭 필요할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3-01-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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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일) 새벽 1시 28분, 전 국민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기상청이 보내온 인천 강화군 인근 규모 4.0 지진 안내 문자 때문입니다. 인천, 서울 등 인근 지역에서는 건물 흔들림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요.

지진 영향이 거의 없는 부산 시민의 단잠까지 깨버렸습니다. 지역도 북한과 인접한 지역이어서 ‘전쟁이 난 줄 알았다’며 놀랐다는 시민이 속출했습니다.

재난 수준에 따라 3단계 경보…긴급 재난 문자는 72일 만

재난문자는 국민 생명이나 신체·재산 피해가 예상될 때 피해를 줄이거나 예방하기 위한 서비스입니다. 2004년 12월 소방방재청과 이동통신사 간 협정을 통해 강원, 경기 및 경북 지역에서 시작돼 이듬해 전국으로 확대됐습니다. 이후 스마트폰 보급률이 증가하며 재난경보를 위한 대표적인 국가 서비스로 활용되고 있죠.

한국은 자체적인 KPAS(Korean Public Alert System) 규정에 따라 문자를 송출합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송출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련법에 따라 지자체나 정부 부처가 비용 부담 없이 문자를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재난 문자 사용이 확대된 건 2016년 9월 12일 경주 지진 이후입니다. 당시 지진 발생 후 9분이 지나서야 재난문자가 발송돼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을 받았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는 초기대응과 확산방지를 위해 재난문자 활용이 크게 늘었습니다.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긴급한 상황을 표현할 때 재난 문자가 일제히 울리는 장면을 삽입할 정도로 재난 문자가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재난문자는 재난이 위급한 수준에 따라 크게 3종류로 나뉩니다. 이제껏 송출된 적 없는 ‘위급 재난 문자’는 공습경보, 경계경보, 화생방경보와 경보해제 상황에 활용됩니다. 단말 알림 소리는 60㏈(대화를 나눌 때 나는 소리 정도) 이상이어야 하고 수신 거부가 불가하죠. 그 아래 단계인 ‘긴급 재난 문자’는 테러, 방사성물질 누출 예상 등의 상황에 송출합니다.

이날 새벽 송출된 인천 강화군 지진 안내도 긴급 재난으로 분류됐는데요. 단말 알림 소리가 40㏈(도서관 소음 수준) 이상이지만 수신 거부가 가능합니다. ‘안전 안내 문자’는 위급·긴급재난 이외 재난경보와 주의보에 보냅니다. 하루에도 수 건씩 받는 재난 문자는 대개 여기에 해당하는데요. 단말 알림 소리는 일반 문자 설정값에 따르며, 수신 거부도 가능합니다.

▲지난해 10월 17일과 18일, 이틀 간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 관련 안전 문자를 세 차례 발송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안전 안내 문자’ 한 해 5만 건 이상…새해 들어서도 1026건 이상

안내 문자 중 가장 빈번히 활용되고 있는 건 ‘안전 안내 문자’인데요. 불필요한 내용 발송이 잦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일일 코로나 19 확진자 수, 날씨와 공기 질, 실종자, 교통사고와 차량 흐름 관련 내용이 모두 ‘안전 안내 문자’로 발송되기 때문입니다. 여름철 계곡·하천 물놀이 유의사항, 외출자제와 손 씻기 당부 등 위급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안내도 ‘안전 안내 문자’로 날아옵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을 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카톡 메시지, 카카오T·내비 주요기능 이용 불편 없으십니다’, ‘상세내용은 카톡 상단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완전한 정상화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등의 내용을 안전 안내 문자로 송출해 ‘사기업 관련 내용을 왜 재난문자로 보내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용뿐 아니라, 단순 양의 측면에서도 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1년 9월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자료에 따르면 5년간 발송된 재난문자는 △2017년 877건 △2018년 860건 △2019년 911건 △2020년 5만4734건 △2021년 4만606건(8월 집계 기준)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2017년 두 달 동안 올 재난 문자가 2020년에는 하루 만에 쏟아진 셈이죠.

재난문자로 인한 국민 피로도가 높다는 지적이 일자 행정안전부는 2021년 4월 15일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을 개정해 모든 기관에 통일성 있는 일관된 운영지침을 제정하고 송출 금지사항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재난 문자가 송출됩니다. 올해 1월 2일부터 1월 8일까지 전국에 발송된 재난문자는 1026건인데요. 하루 평균 146건에 달하는 수준으로, 하루 149건이 송출된 2020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자연재해 중심으로…다른 나라는 어떻게?

잦은 지진으로 재난경보시스템이 발달한 일본은 지진과 해일에 대한 재난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 관련 경보가 많은 대신, 물놀이 수칙, 코로나 확진자 수와 같이 사소한 내용에 대한 안내는 송출하지 않습니다.

2020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된 ‘일본 재난문자 서비스 현황 연구’에 따르면 일본 통신사들은 ETWS(Earthquake&Tsunami Warning System)를 사용해 일본 기상청이 발표하는 ①기상 관련 정보, 각 정부 부처 및 지방 자치 단체에서 발령하는 ②재해·피난 정보를 제공하는데요. 기상 관련 정보는 지진, 쓰나미, 호우, 폭풍, 화산 폭발 등 위급한 자연재난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재해·피난에 대해서는 무력 공격 사태, 홍수 정보나 지역 재난 경보와 안전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 소방청이 관리하는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통해 에리어 메일(Area Mail)로 국민의 스마트폰에 문자 알림 형태로 전송됩니다. 일본 내 외국인 여행자와 거주자를 위해 일본이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 ‘Safety tips(세이프티 팁스)’에 따르면 가장 최근 송출된 재해·피난 정보는 지난해 11월 3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안내입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재난문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재난문자 알림 끄기’, ‘재난문자 차단’, ‘아이폰 재난문자 알림 끄기’ 등의 단어가 자동완성된다.

재난문자 차단법 찾는 국민…민감도 떨어질까 우려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알람에 국민이 시급히 확인해야 하는 재난 알림에도 둔감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재난문자가 피곤해 아예 관련 알림을 꺼놓는다는 시민도 많습니다. 직장인 김모 씨(26)는 “알림이 시끄러워서 꺼 놓은 지 오래”라며 “카페 같은 데서 갑자기 알림이 울리면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재난문자’를 치면 ‘재난문자 알림 끄기’, ‘재난문자 차단’ 등의 검색어가 상위권에 올라 있죠.

이날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진보다 재난문자에 더 놀랐다”, “지진이야 어쩔 수 없지만 꼭 필요한 것만 (재난 문자를) 보냈으면 좋겠다. 심장이 벌렁벌렁한다”는 말들이 잇따랐습니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더피알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과거 사스, 메르스 등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얻은 실패 사례를 기점으로 만든 긴급재난문자의 시스템 자체는 긍정적”이라 보면서도 “코로나19가 심각해진 후로는 (발송이) 너무 빈번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너무 잦은 재난문자가 오히려 경각심을 무디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적 있습니다.

다만 재난문자에 부정적인 견해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7월 23일 울산시는 매일 오전 확진자 수를 알려주던 안전 안내 문자가 중단했는데요. 당시 “스팸 문자나 다름없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아 싫었다”며 반기는 시민이 있던 반면, “방역에서 손 놓은 것 아니냐”, “확진자가 증가하는 위급한 상황에 문자 중단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재난 문자가 발송되니 안심이 된다는 시민도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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