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롯데마트 아니라도 ‘팔곳’ 많다…을(乙)의 반란이 시작됐다

입력 2023-01-01 13:00수정 2023-01-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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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납품업체 을(乙)의 반란이 시작됐다. 과거 갑(甲)인 유통채널의 압력에 울며 겨자먹기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식품업체들이 납품단가 결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배경으로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오프라인을 비롯해 쿠팡과 네이버쇼핑에 이어 자사몰까지 채널 다양화로 소위 ‘팔곳’이 많아졌다는 점이 꼽힌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올라 제품 가격을 올린 식품업체들은 납품단가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통사들은 고물가와 불황에 낮은 가격으로 고객을 잡아야 해 입장이 갈린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납품단가를 둘러싼 유통사와 식품 제조사 간 힘겨루기가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될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 대형마트가 하나 뿐이냐?

판매 수수료를 챙기는 백화점과 달리 대형마트와 쿠팡 등은 제조사들로부터 제품을 직매입해 자사 창고에 두고 팔아 마진을 남긴다. 따라서 더 싼값에 매입하려는 유통사와 더 높은 값을 받으려는 제조사간 갈등은 상존해왔다.

기존에 유통사는 갑, 제조사는 을의 입장이었지만 판매 채널 다양화로 상황이 바뀌었다. 업계는 식품업체들의 ‘반란’이 본격화된 시점을 2010년 께로 본다. 당시 대형마트가 ‘10원 전쟁’으로 불리는 최저가 경쟁에 나서면서, 제조사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 갈등을 빚었다. 농심과 CJ제일제당 등이 납품 중단 등으로 강하게 반발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당시 제조사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CJ제일제당과 농심이 각각 식품업계 1위, 라면업계 선두였기에 가능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유통환경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도 갈등의 원인으로 꼽힌다. 팔 곳이 늘었다는 얘기다. 당시 마트 업계에서는 롯데마트가 본격 참전을 선언하며 직전해 69개던 매장 수가 2010년 90개로 덩치를 불렸고, 홈플러스도 1년새 7개가 점포가 새로 생기며 마트 수가 크게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옥션과 인터파크, G마켓 등 오픈마켓의 성장세도 컸다.

◇ 쿠팡 말고 네이버쇼핑에서 팔아도 된다

잠잠하던 유통사와 제조사간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쿠팡을 통해서다. 2019년 LG생활건강, 크린랩 등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2021년 쿠팡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상품 반품 금지, 경제적 이익 제공 요구, 배타적 거래 강요 등을 이유로 30억 원대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쿠팡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지난해에도 신경전은 이어졌다. 작년 11월부터 쿠팡은 납품 단가 협상 과정에서 CJ제일제당 주요 제품의 발주를 중단했다. 쿠팡 괸계자는 “양사는 서로 중요한 파트너이며, 이번 논란은 논의 과정에서 나온 파열음에 불과하다”면서 “향후 신뢰를 기반으로 잘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도 작년 12월 납품단가 이견으로 CJ제일제당, 풀무원, 대상 등 일부 냉장·냉동 제품 발주를 중단했다. 그룹 계열사인 롯데제과도 발주 중단업체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마트가 롯데슈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식품업체들로부터 다른 납품 가격으로 공급받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고, 식품업체들에 낮은 가격으로 납품단가를 맞춰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식품업체들이 곤란하다며 반발했고, 롯데마트는 발주 중단이라는 강수를 뒀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롯데쇼핑 측은 “제조사와 적정 납품단가를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마트에서 잘 팔리는 제품과 1+1 행사 제품 등 품목별로 대형마트와 슈퍼에 공급하는 납품가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무작정 싼값에 공급하라는 의견을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롯데제과 측은 “타사들이 납품단가에 대한 이견으로 발주가 중단된 것과 달리 당사는 신메뉴를 넣고, 기존 메뉴를 빼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결이 다르다”고 전했다.

▲쿠팡 대구FC 전경 (사진제공=쿠팡)

◇ 저가경쟁 내몰린 유통사 vs 원자재 폭등에 ‘수익성 방어’ 나선 식품업체

특히 유통채널 다양화로 제조사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전망이다. 과거 유통채널 경쟁이 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끼리 이뤄졌다면, 이제는 GS25와 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채널 급성장에 따라 새로운 경쟁자로 떠올랐다. 실제 2021년 편의점의 3사 매출 합계는 대형마트 3사 매출을 넘어섰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G마켓과 11번가가 건재한 가운데 쿠팡이 덩치를 불렸고, 네이버쇼핑의 영향력도 커졌다. 오픈마켓인 네이버쇼핑은 제조사들이 입점해 상품을 팔 수 있어 식품업체가 가격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제조사별 자사몰도 있어 기존 유통채널의 견제 수단이 많아졌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환율도 영향에 제품 가격이 오른 점도 갈등 요소로 꼽힌다. 식품제조사 입장에서는 더 높은 가격으로 납품해야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어서다. 반면 유통사들은 판매처 다양화로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쉽지 않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통상 연말에 다음해 납품단가를 놓고 유통채널과 협상을 벌이는데 최근 가격 인상도 있었고, 경기가 어렵다보니 (유통채널이) 요구하고 (납품업체가) 수용하는 과정이 예전보다 다소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한 제조사들과 저가 경쟁에 내몰린 유통채널의 납품단가 갈등은 불황에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최근 식품업체들의 잦은 가격 인상으로 유통업체들과의 입장차가 더욱 커졌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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