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크리스마스에는 첫사랑과…영화 ‘패밀리 맨’

입력 2022-12-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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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꿈을 꾸었다. 첫사랑을 만나서 차 한잔 하는 꿈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그냥 훌훌 털어버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만난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위였다. 매주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주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수업시간에도 그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방학, 우리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엔 공중전화 한 번 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어머님이 전화를 받더니 내 전화라며 건네준다. 받아보니 헉, 그녀다. 땀이 몽글몽글 이마에 흐른다. 분식점에서 친구랑 있는데 돈이 없단다. 와서 좀 빌려 달란 얘기다. 뜻밖이었다. 평소 말 몇 마디 섞지 않았던 사이인데…. 난 득달같이 나가 그녀를 만났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이 펑펑 쏟아졌다. 우린 눈길을 조금 걸었다. 언덕을 올라 그녀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돌아섰다. 그리고 끝이었다. 그 이후론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대학입시 준비로 성당에 나오지 못했고, 그렇게 허무하게 첫사랑은 끝이 났다. 벌써 40년 전 일이다. 꿈에서 깬 나는 가슴이 아리도록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흥신소 같은 곳에 부탁해서라도 찾고 싶은 간절함이 올라왔다. 지금 와서 만난들 뭐하겠는가 하는 마음에 시간이 흘러가자 점차 흥분된(?) 마음이 잦아들었다.

영화 ‘패밀리맨’은 가족의 소중함을 내세우지만 기실 첫사랑의 이야기다. 잭(니콜라스 케이지)은 뉴욕의 출세한 투자전문가이자 플레이보이다. 젊은 시절, 함께 살자는 첫사랑 케이트(테아 레오니)를 뿌리치고 런던으로 떠나 성공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 흑인의 농간으로, 런던으로 떠나지 않고 케이트와 살며 뉴욕 근교에서 타이어 판매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변한 것. 처음엔 삶을 부정하지만 왜 13년이 지나도 그녀를 쉽게 잊지 못하는지 잭은 서서히 알게 된다. 그녀와 함께 살 수 있다면 뉴욕의 펜트하우스와 최고급 페라리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번 벗어난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복원하는 힘이 있다. 잭은 타이어를 팔면서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정위치로 돌아온다. 그렇게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따뜻한 거실에서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가족과 함께 봐도 좋은 영화이지만, 첫사랑의 상처를 혼자 곱씹으며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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