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간판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까

입력 2022-1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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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을 좋아해서 새로운 식당이 생기면 꼭 들른다.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가 잘 어우러질수록 최고의 식당이다. 몇 달 전 집 근처 한 보쌈집을 방문했었는데, 돼지고기는 삶은 지 오래됐고 김치는 싱거워서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주 그 보쌈집이 새로운 간판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 낡았던 내부는 새롭게 고쳤고, 메뉴는 더 늘었다. 덩달아 가격도 올랐다. 주인이 바뀌었나 하고 들여다보니 그대로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보쌈정식을 시켰지만, 맛은 오히려 전보다 못했다.

간판을 바꿨지만, 본질은 그대로인 보쌈집을 들른 후 새 정부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정책이 떠올랐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내에 소부장국은 산업공급망국으로 개편됐다. 공급망을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지난 정부의 상징이던 '소부장'을 이름에서 빼려는 새 정부의 의지가 담긴 건 아닌지 의문부터 든다.

멀쩡하던 소부장을 지워버렸음에도 소부장 정책은 더 강화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부장 핵심 기술 전략은 100개에서 150개로 늘었다. 내년도 소부장 관련 예산은 1조7710억 원에 달한다. 산업공급망이 붙으면서 2024년엔 예산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지금까진 간판만 바꾼 보쌈집이랑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담당 업무는 많아졌고 예산도 늘렸지만,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맞춰 공급망 대응을 하겠다는 의도지만, 이미 통상교섭본부와 담당국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상태다.

소부장 정책은 사업 성과보다 예산이 너무 많다는 지적까지 나와 무리한 변신 같아 보인다. 기존에 있던 소부장 정책부터 제대로 해놓고 천천히 늘리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간판을 바꾼 만큼 제대로 된 정책을 기대해본다. 지난 정부 색깔을 지우기 위해 이름만 바꾼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공무원들 몫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 업무 의욕만 사라질까 걱정된다. 공급망 강화하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면, 담당 직원이라도 늘려줘서 업무 부담이라도 줄여줘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부터 이름 바꾸기에 급급했다. 에너지전환과는 에너지정책과로 바꿨고, 신북방·신남방통상과는 각각 통상협력총괄과와 아주통상과로 바꿨다. 이름만 바꿨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소부장국은 공급망까지 맡겠다고 한 만큼 더 확실히 바뀌길 바란다. 간판만 바꾸고 맛은 더 안 좋아진 보쌈집과 달리, 간판 바꾸고 퀄리티까지 더 좋아진 새 정부의 '소부장 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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