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억

입력 2022-1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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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성탄절이 다가왔다. 백화점과 상점에 등장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들이 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기억나는 환자가 있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진료를 거의 마칠 즈음 중년의 환자분이 오셨다. 나도 직원들도 퇴근 후에 얼른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다음날 성탄절 휴일까지 보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초진인 이 환자분만 진료하고 나면 다들 바라는 대로 될 것 같았다.

“며칠째 변을 못 봐서요.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오지 않아요. 화장실에서 몇십 분씩 앉아만 있다 나왔어요.”

변비다. 변비약만 주고 보내면 될 수도 있지만 가끔 며칠씩 변을 못 보게 되면 직장에서 정체된 변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아예 막혀버린 경우일 수도 있었다. 직원에게 직장수지검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했다. 장갑을 끼고 항문을 통해 확인했더니 예상대로 딱딱한 돌처럼 굳은 변이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변비약이 일체 무익하다. 막힌 것을 조금이라도 빼내 주어 정체된 변이 나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줘야 한다. 손가락으로 파내야 하는 것이다.

직장 분변 제거술.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돌같이 굳은 변이 너무 크면 쉽게 빼낼 수 없다. 그런 경우 손가락으로 직장 안에서 변을 쪼개어 조각낸 후 제일 작은 덩어리부터 손가락 끝에 걸고 직장 벽을 따라 끌고 내려와 항문 밖으로 빼내야 한다. 시간을 단축하려 무리를 하면 항문이 찢어져 출혈이 심할 수 있다. 천천히 달래고 달래서 뜯겨낸 변을 살살 빼내야 한다.

며칠째 숙성된 변이 나오면 파장이 아주 강렬하다. 냄새가 손가락에 배어 보통 두 개의 글러브를 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니 크리스마스 이브 진료를 마칠 즈음 내원한 환자에게 직장 분변 제거술을 해야겠다고 하는 원장을 직원들은 입을 벌린 채 말없이 쳐다보았다. 나의 결심 어린 얼굴과 노란 환자의 얼굴이 한 번 더 무언의 명령을 내렸고 이내 직원들은 처치실에서 직장 분변 제거술을 준비하였다.

숙성된 냄새가 처치실을 넘어 대기실까지 퍼질 무렵 큰 덩어리들은 얼추 빼냈고 나머지는 약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퇴근 시간은 지났고 나머지 처리를 하는 직원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다시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는 노란색 뜬 얼굴에서 분홍색 상기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이제 살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 진료를 마치고 퇴근을 하였다. 거리에서 캐럴이 흘러나왔고 손에 케이크를 든 사람들이 집으로 종종거리며 향했다. 글러브를 두 겹을 꼈지만, 아직도 손가락에서 냄새가 나는 듯했다. 다음 날이 성탄절이고 바로 주말로 이어져서 중년의 환자에게 약만 줬으면 환자는 괴로운 성탄절을 보냈을 것이다. 응급실을 찾았을지도 모르고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는커녕 하늘이 노란 성탄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난처한 상황 가운데 처한 사람을 도왔다는 생각에 뭔가 나도 성탄절의 의미에 가까운 일을 한 것 같아 퇴근길 마음이 뿌듯하고 발걸음이 힘찼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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