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머니무브] 한국의 저출산 문제 해결책은?

입력 2022-12-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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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산지원금 확대가 단기 효과 내는 지름길

지난 기고에서 한국이 홍콩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만혼(晩婚) 경향이 점차 우세해진 것, 그리고 여성의 교육 및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산과 양육에 따른 경력단절의 비용이 커진 때문이었다.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기에 해결책이 명확해 보이지만, 2006년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법’ 제정 이후 16년이 지나도록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자.

근로시간 단축·육아부담 해소 ‘유연한 일자리’

미국의 사례를 보면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일수록 결혼율이 높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유연한 일자리’가 경제 전체에서 우세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연한 일자리란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일이 벌어질 때마다 즉각 대응이 가능하며 노동시간도 매우 긴 종류의 일자리들이 탐욕스러운 일자리다. 반대로 유연한 일자리는 아이가 아플 때에는 출근 시간을 잠시 미루고 병원에 달려갈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된 일자리를 뜻한다. 대신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밥 먹듯 초과노동을 하기에 유연한 일자리에 비해 높은 소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오랫동안 애널리스트(기업 분석가) 일을 했는데,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전형이었다. 언제나 고객의 전화에 응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고 출근시간은 새벽 5시에 고정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업종에 여성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확연하게 느낀다 .왜 그럴까? 다들 짐작하듯, 이른바 주 52시간 노동제가 도입된 데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고비로 재택근무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즉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탐욕스러운 일자리에서 유연한 일자리로 변모함으로써 여성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또 웨딩 마치를 올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2023년 경기 여건이 나빠지며 재택근무를 비롯한 근무 환경 유연화 흐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연공서열 중심의 직장 내 위계구조가 빠른 시일 내에 바뀔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변화를 늦추는 요인이라 생각된다.

非婚 출산 확대, 사회문화적 인식이 걸림돌

유연한 일자리의 확대 이외에 생각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해법은 비혼(非婚) 출산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전체 출산 중 비혼 커플의 비중은 40.2%에 이르며, 프랑스와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의 비혼 출산율은 각각 56.7%, 55.2%, 54.6%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비혼 출산율은 단 1.9%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으로 이민 간 아시아계 여성들도 비혼 출산 비율이 낮다는 것이다. <그림 1>은 2000~2015년 기준, 미국에 살고 있는 여성의 국적별 혼인 상태 출산율을 보여준다. 이 비율이 1에 가까울수록 결혼 상태에서만 출산하는 비율이 높고, 0에 가까울수록 비혼 출산비율이 높은 것이다. 한눈에 보더라도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계 여성의 비혼 출산 비율이 거의 0%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문화’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생아’라는 경멸적인 호칭부터 가부장적인 문화, 그리고 집단 내의 노골적인 따돌림이 모두 비혼 출산을 낮추는 요인이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동거 가구의 36.5%가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매우 미미한 게 현실이다. 동거커플의 28.3%가 정부 지원 혜택에 제한을 겪었고, 응답자의 21.1%가 일상생활 서비스 혜택마저 제한이 있다고 답할 정도이니 말이다.

학령인구 감소…교육예산 재조정 직접 지원을

한국 기업의 문화가 갑자기 변하고 한국 사회의 문화적 흐름이 일거에 바뀌기는 힘들다. 따라서 앞에서 거론한 두 가지의 방법은 장기적인 효과는 발휘할지 몰라도 지금 당장의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부가 돈을 쓰는 것이 가장 손쉽고 또 즉각적인 대응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그림 2>의 가로 축은 각국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출산 지원자금 지출 비중을 나타내며, 세로 축은 각국의 합계 출산율을 보여준다. 한국은 정부의 출산 지원이 가장 낮으며, 출산율도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도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터울이 큰 덕분에 둘째는 이제야 중학생이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기까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거의 기억 나는 게 없을 정도이며, 특히 출산과 임신 기간 중의 지원은 정말 하찮은 것이었다. 말로만 수백조 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투입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직접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재정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있겠지만, 필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교육 예산의 재조정이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데 2017~2022년 교육 예산은 연 7.0% 씩 늘어 84조 원을 넘어섰다. 만일 30만 명의 신생아에게 매년 100만 원을 지급하면 3000억 원이 소요되고, 지금 당장 10세가 되지 않은 아동의 가정에 동일하게 지원해도 3조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가정의 소득 수준별로 지원 혜택을 조정한다면 저소득층 가정에는 연 200만 원, 아니 그 이상의 돈도 매년 지급 가능하다.

국가균형발전·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 조정도

두 번째 방법은 출산율 2.1명 선을 회복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특수 목적세를 걷거나 특별회계 조정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한국은 총 20개의 특별회계를 설치 운영 중인데 2022년 기준 78조 원에 이른다. 특히 국가균형발전(11.4조 원)이나 농어촌구조개선(15.3조 원) 등의 분야는 출산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이니 지출 조정이 가능한 영역이라 생각된다.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국가균형발전과 농어촌구조개선이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저출산 대책이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중대사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좀 더 구체적인 행동을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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