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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속으로] 내부통제와 이해관계자 경영

입력 2022-11-24 06:38수정 2022-11-2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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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2022년 11월 22일 금융감독원은 국내에서만 약 4800억 원의 환매 중단 사태를 초래한 독일 헤리티지 펀드에 대해 민법상 ‘계약 취소’를 적용해 이를 판매한 금융사들에 “전액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했다. 펀드에 투자한 소비자들이 ‘상품 제안서상 허위 사실들을 알았다면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해당 계약은 취소돼야 한다는 이유다.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와 은행이 “원금이 보장된다”고 하거나 “해당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불완전 판매’의 전적인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독일 헤리티지 펀드까지 소위 ‘5대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소비자 분쟁 조정이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금융 생태계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당국 포함, 관련 이해관계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정작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인 운용사들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직접 펀드에 투자한 소비자와 이를 판매해 대부분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 은행과 증권사들이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였다. 해당 판매사들은 금전적인 책임뿐 아니라 대표이사 등 관리자들의 법적 경영상의 책임까지 져야 한다. 지속가능성과 이해관계자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이사들의 제대로 된 내부통제 구축과 운영이 더욱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 피해 방지와 공정거래 보장 등 사업상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회사 ‘이사의 감독의무’도 자연히 확대 강화되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각국의 사례는 이를 현재 진행형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이고 직관적인 미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해 보자. 과거 1963년, ‘그레이엄(Graham) 판결’ 때만 해도 이사는 기업의 위법행위나 의심할 만한 사유를 ‘사전에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해 책임을 지는 ‘소극적인 감시의무’를 부담했다. 1996년 내부통제의 전설적인 ‘케어마크(Caremark) 판결’이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사는 회사의 중요한 사실을 몰랐더라도, 이사회가 알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정보보고 시스템 및 준법 프로그램을 구축할 의무”가 있다며 이사에게 보다 ‘적극적인 감독의무’를 부과했다. 즉, 막연히 위법행위를 의심할 만한 사유가 없었거나 이를 몰랐다는 이유만으로는 면책되지 않고 손해배상책임이 생긴다.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 운영하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본시장의 근간이자 이해관계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는 ‘회계 규정 준수와 정보 보고’가 그 대상이었다.

이로부터 약 10년 후인 2015년. 이해관계자 경영의 새로운 지평이 된 소위 ‘블루벨 크리머리(Blue Bell Creameries)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미국의 식품회사 블루벨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에서 식중독을 유발하는 리스테리아(Listeria)균이 검출돼 심각한 식품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기업가치가 급락하자 주주들은 이사들의 신인의무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회사는 패소했다(Merchand v. Barnhill). 회사의 컴플라이언스가 단지 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전방의 이슈로 확대된 것이다.

좀 더 살펴보자. 아이스크림을 파는 회사에서 ‘식품 안전’ 이슈는 회사 존속에 직접 영향을 주는, 가장 필수적이고 최우선으로 관리 감독해야 하는 사업 리스크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합리적인 보고시스템이 없거나 지속적인 감시 소홀이 있었다면 해당 회사의 이사는 감시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제 반드시 회계 관련 규정이 아니어도, 아무리 미국 식약청(FDA)의 규정을 준수했더라도,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의 본질상 중요한(Intrinsically Critical)’ 리스크라면 직접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하고, 지속적인 감독이 없었다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바로, ‘사업상 중대한 리스크(Mission Critical Risk)’의 법리다. 미국의 가장 친기업적인 주인 델라웨어 판결이란 것이 더 놀랍다. 지속가능성과 이해관계자 경영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판례의 선후와 내용을 매칭하면서 보면, 그 변천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다. 2004년 대법원은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 기준으로, 다른 이사의 업무 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음에도 이를 방치한 때로 제시했다. 하지만, “난 몰랐다”고 항변할 경우, 의심할 만한 사유를 실무적으로 어떻게 입증한단 말인가. 나아가 회사의 이사가 회사의 중요 리스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면책 사유라니 뭔가 이상했다. 이에, 2008년 대법원은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 시스템 구축 및 작동 노력”으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업그레이드는 계속된다. 2021년 대법원은 철강업체끼리 가격 담합한 ‘유니온 스틸 판결’에서 내부통제시스템이 구축되었더라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이사들이 주의를 요하는 위험을 알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면 대표이사는 감시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소수 과점 형태인 철강 산업의 경우, 회계 부정뿐 아니라 가격 담합처럼 ‘사업 운영 과정에서 발생 가능성 큰 법규 위반 리스크’에 대해서는 내부통제 준수 여부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위반 시 즉시 보고 및 시정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5월 대법원은 ‘대우건설 4대강 사업 입찰담합’ 판결에서 직전의 ‘내부통제시스템 법리’를 거듭 확인하며, 내부통제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면 “보고시스템의 구축이나 제대로 된 운영을 촉구하지 않고, 외면하고 방치한 사외이사도 감시의무 위반”이라고 했다. 기존의 사내이사에서 사외이사까지 확대됐다.

내부통제 이슈와 이사의 감독책임 확대는 국내외 공통된 법 환경 트렌드로, 회계뿐 아니라 사업 전 범위, 금융뿐 아니라 제조업 등 모든 산업의 전 범위에 해당된다. 회사 내부통제 시스템뿐 아니라 컴플라이언스, 나아가 거버넌스 경영 차원에서 새롭고 다각적인 논의와 해법이 필요하다. 회사의 안정된 사업 운영, 고객 보호, 공정거래와 장기적인 성장과 존속을 위해, 내부통제의 실질화와 전사 리스크와의 통합 운영은 이해관계자경영 시대의 필수요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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