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으로 세상 읽기] 이태원 참사 책임 돌리기

입력 2022-11-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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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폭탄 돌리기 게임. 상당히 단순하다. 참가자 중 한 명이 모형폭탄을 들고 주어진 주제에 대한 말이나 행동을 한 후 다음 사람에게 폭탄을 건넨다. 모형폭탄은 특정 시간이 지나면 폭파음을 내지만,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속 폭탄을 전달하다가, 폭파음을 내는 순간 폭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벌칙을 받고 게임이 끝난다. 이 게임에서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이라는 것은 딱히 없다. 빠르게 옆 사람에게 폭탄을 넘기는 것이 그나마 나은 방법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은 관련자들의 책임 돌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경찰에 안전사고 예방 책임을 묻고, 경찰은 경찰 지휘부와 행정안전부가 아닌 경찰·소방·구청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책임을 묻는 수사를 하고 있다.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을 미리 배치했어도 예방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고, 구청장은 “핼러윈은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며 개인의 책임을 묻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책임 돌리기가 계속되면 문제의 파악이나 궁극적인 해결책 찾기는 뒷전이 된다. 폭탄 돌리기의 벌칙자가 결정되듯, 어떠한 누군가가 모든 책임을 다 덮어쓰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거의 운에 의해서 벌칙자가 결정되는 폭탄 돌리기와 달리, 책임 돌리기의 경우 권력에 의해 책임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힘없는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그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일반 시민들에게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행위이다. 고의적으로 밀었다는 누군가, 미끄럽게 오일을 뿌렸다는 누군가가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집중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참사의 책임을 묻는 행위는, 참사 당시 그 현장에 없었던 이들을 가해자로 낙인찍어 버렸다. 나아가 참사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게 “애초에 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무턱대고 묻는 행위는 더없이 폭력적이다. 개인이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어떤 공간에 있고자 한 것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는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면서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줘야 하는 것은 경찰과 정부의 역할이다.

반면 책임 돌리기 중에도 권력자·지휘부의 무능과 시스템의 허점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례를 제정하여 일반음식점이 음악을 크게 틀고 고객들이 춤을 출 수 있게 해준 용산구의회와 용산구청은 ‘축제’를 주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상’을 키운 것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보 10분 거리에서도 관용차에 몸을 맡기고 50분이 지난 후에야 현장에 도착한 경찰서장의 대처도 사고 수습을 위한 ‘발빠른 대응’을 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도 인정한 것처럼) 컨트롤타워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까지 보고가 되고 대처·수습의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도 상당한 허점을 보여주었다. 이 부실한 타워를 만들고 유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중앙정부는 애도기간 중 공무원들의 기강 확립을 이야기하며 휴가를 자제하도록 지시했으며, 어떤 지방정부는 애도기간 동안 행사나 축제를 취소시키고 집합 자체를 금지하기도 하였다. 참사를 애도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자는 취지와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과정이 상당히 강압적이었던 것이다. 애도의 책임을 개인에게 넘겨주기보다, 애도의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했다. 권력자와 지도층이 먼저 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성숙한 대중은 자발적으로 함께했을 것이다. 참사의 책임도 마찬가지다. 권력자와 지휘부가 먼저 자신의 책임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실무자들은 꼬리 자르기가 무서워 떨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은 스스로의 실책을 돌아봤을 것이다.

책임 돌리기의 말단에서 “여론의 한가운데로 던져진” 실무자들은 울부짖고 있다. “간절한 증원 요청”이 묵살당했음에도 살인자로 비난받고 있다. ‘현상’이 두려운 개인들은 일상이 불안하다. 출근길 지하철도, 사람이 많은 인기 명소도 꺼려진다. 이 ‘현상’의 책임은 또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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