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美 설리번 안보보좌관의 기술 독트린

입력 2022-11-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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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최근 워싱턴D.C.를 다녀왔다. 올해로 네 번째 방문이다. 갈 때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미국 조야의 대중국 견제 기조가 날이 갈수록 강경해진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의 화두는 역시나 9월 16일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가 이끄는 특별 경쟁 연구 프로젝트(SCSP: Special Competitive Studies Project) 국제 콘퍼런스에서 있었던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의 기조연설 내용이었다.

설리번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기조 변화를 재확인시켜 줬다.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 더 이상 중국의 부상을 용인할 생각을 버렸다. 설리번은 과학기술에 있어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의 문제임을 명확히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중국과 특정 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미국은 특정 기술에 있어 중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먼저 컴퓨팅 관련 기술, 생명공학 기술, 친환경 기술을 특정하며 이들 기술이 기술 생태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전력승수(force multiplier)’라고 언급했다. 전력승수란, 추가적으로 사용했을 때 전력의 비약적인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를 말한다. 즉, 미국은 이 세 가지 분야에서의 리더십 확보를 국가안보의 필수 요소로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미중 전략 경쟁의 컨텍스트에서 보면 앞으로 미국의 대중국 기술견제는 위 세 개 분야에 집중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두 번째로 격차의 문제다. 미국은 그간 중국과의 일정 기술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을 펴왔다. 특히 트럼프 정부 시기의 대중국 견제 정책이 그랬다. 미국이 생각했을 때 우려되는 특정 첨단기술 기업을 표적으로 수출통제를 적용하고 이외 기업에는 기술에 대한 접근을 열어줬다. 중국과의 일정한 격차만 유지할 수 있다면 미국의 기술 수준을 위협하는 기업만 누르겠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설리번의 이번 연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첨단기술 개발역량의 동결이자 봉쇄다. 미국이 생각하는 중요 분야, 즉 전력승수 관련 분야에 있어서는 기업이 아닌 산업 단위로 통제하겠다는 전략이다.

설리번의 발언이 현실화된 대표적인 사례가 10월 7일 중국의 슈퍼컴퓨팅과 반도체 산업을 대상으로 내놓은 미국 산업안보국(BIS)의 새로운 제재 규정이다. 상술한 전력승수 분야 중 컴퓨팅 관련 기술 분야에 대해 초강력 대중국 수출통제 규제를 내놓았다. 시스템반도체 관련해서는 핀펫(FinFET) 또는 가펫(GAAFET) 구조의 16nm 또는 14nm 이하, D램(RAM) 메모리 분야는 18nm 이하,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 분야는 128단 이상을 규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에 더해 미국 상무부 허가 없이 중국에 위치한 특정 반도체 제조 공장에서 반도체 개발 또는 생산을 지원하는 미국인의 활동도 제한했다. 상당히 광범위한 인력 통제를 동시에 실시한 것이다. 즉, 더 이상 중국 내 첨단 반도체 개발과 생산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다행히도 미국 정부는 중국 내 우리 반도체 공장에는 1년이라는 적용유예 기간을 부여했다. 미국의 수출통제 규정은 수출기업에 특정 조건하에서 임시로 일반허가를 내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수입기업인 중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이 미국의 장비를 제약 없이 수입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줬다는 점에서 초유의 접근이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실수에 대한 보상이라든가, 동맹인 우리의 이익을 고려한 미국의 배려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당장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혼란을 피하고자 하는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며 긍정적인 신호로 읽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이크 설리번의 연설에서도 나타나듯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방향은 정해졌고 우리에게 이에 적응할 시간을 준 것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11월 8일 치러질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수를 획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중국 정책과 경제안보 정책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초당적인 접근을 보이는 미국이다. 따라서 당장 상하원에서 공화당이 우세를 점한다고 해서 대중국 정책이나 경제안보 정책 방향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강도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기조 변화를 정확히 읽고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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