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고’ 친 기업의 ‘결자해지’

입력 2022-10-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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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헌 부동산부장

지난 주 건설현장에서는 ‘또’ 사고가 일어났고,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아직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주검이 식지도 않았는데 정치권과 언론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인지,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해서만 떠들고 있다.

시계를 돌려 지난 1월, 광주광역시에서 시공 중인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린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론은 들끓었고 정치인들은 현장을 찾아 ‘등록말소’ ‘폐업’과 같은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후 10개월, 우리 노동현장에서는 계속 사고가 일어났고 그때마다 비슷한 패턴들이 반복됐지만 그 중심에 정작 ‘피해자’는 없었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사이 건설현장에서만 사고로 52명이 세상을 떠났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여론과 정치권은 들끓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어떻게 보상받고 어떤 조치가 내려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말 그대로 ‘처벌’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의 화정 아이파크에 대한 사후 처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6명의 희생자가 나온 지난 1월 사고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3700억 원을 들여 시공 중이던 모든 아파트를 철거하고 다시 지어 입주예정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발표에 이어 주거지원책까지 제시했지만, 입주예정자들은 피해를 보상하라며 서울로 상경해 시위했다.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고 외부에서 보기에는 회사가 추가 보상에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국정감사에서는 “대기업이라고 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 말라”는 등 주무 장관의 엄포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지난 18일 현대산업개발과 화정 아이파크 입주예정자협의체는 입주 시까지 성공적인 리빌딩을 위해 지속해서 협의해 나갈 것을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난해한 문제들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실타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강경했던 입주예정자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행 협약서가 완료된다면 많은 분들이 만족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건설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입주예정자들도 응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3일 만에 현대산업개발은 붕괴사고 관련 조사 및 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글로벌업체 LERA와 MOU를 체결하고 현장을 방문해 기존 건축물의 해체와 리빌딩까지 협력을 약속했다.

어떻게 이렇게 분위기가 바뀔 수 있었을까? 현대산업개발은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회사의 명운을 걸고 진정성을 보이며 전사가 총력을 다해 화정 아이파크 입주민의 보상안과 지원계획을 마련하고 공사 중인 단지 및 준공 10년 내 단지들의 안전 점검을 시행하는 등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만약 현장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등록말소나 처벌만을 앞세울 경우 이 같은 지속적인 피해보상안이나 리빌딩이 가능할까? 어떤 기업이든 위기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사고 후에라도 어떻게 ‘피해자’에게 다가가느냐에 따라 기업의 향후 모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또 하나 고민해야 할 것은 현대산업개발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수많은 직원과 가족들이다. 면허취소 수준의 건설업 등록말소 처분이 떨어진다면 1709명(올해 6월 말 기준)에 달하는 본사 직원을 비롯해 7655명에 이르는 계열사 임직원들도 직장을 잃게 된다. 협력사들까지 더하면 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죄는 밉지만 수많은 사람의 ‘밥줄’을 끊는 결정은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한다.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자는 것이 아니다. 참사를 유발한 기업 자체에 책임을 묻는 건 분명 시대적 요구다. 그러나 거기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히 염두에 둬야 한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광주광역시 등도 책임이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일어난 학동붕괴 사고 당시 광주시는 현대산업개발이 진행하는 모든 사업장을 올스톱시켰다. 하지만 그 사고로 현장이 멈춘 만큼 공기 연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화정 아이파크 현장도 이로 인해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사고를 낸 건설사의 입장을 들어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재차 말하지만 모든 사고의 책임은 원도급사가 져야 한다. 대신 처벌을 하더라도 합당한 처벌을 해서 건설사가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을 남겨야 사고수습이든 피해보상이든 할 수 있다. 이제는 사후약방문 식의 처벌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피해를 수습하고 피해자들을 껴안으려 하는지 감시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접근을 하도록 해법을 고민해 볼 때다. car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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