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토크] ‘물리 컴퓨팅’ 교육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22-08-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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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영 한국외국어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 에프엔에스컨설팅 미래전략연구소장

디지털 문해력, 데이터 문해력 등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물리 컴퓨팅(physical computing)까지 배워야 한다고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디지털 전환으로 지식반감기가 단축되고 있다고 하나, 배워야 할 것만 많아지니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 너무 가혹하다. 디지털 전환으로 지식반감기가 짧아진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는 지식사회화의 이음동의어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으로 힘들었으나, 지식사회에서는 공부하느라 힘들다. 가혹하다는 부분에 공감은 가나 대안이 없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물리 컴퓨팅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 같다. 물리 컴퓨팅은 디지털의 컴퓨터 세계와 아날로그의 물리 세계를 상호 작용하도록 컴퓨터, 전자 및 기계공학을 연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 전반기에 등장한 디지털 범용기술 후보군의 다수가 물리 컴퓨팅이거나 물리 컴퓨팅과 강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반의 실감 메타버스, 3차원(3D) 프린팅, 사물통신, 스마트 로봇과 자율주행자동차, 로봇은 모두 범용기술 후보군인데, 이들 기술은 디지털 관련성을 가지는 동시에 물리 컴퓨팅에 해당한다. 범용기술이란 전 세계적 혹은 대륙 단위로 상당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뜻한다. 범용기술은 인류사회 변동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다수의 범용기술 후보군이 물리 컴퓨팅이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물리 컴퓨팅을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메타버스에 대해 처음으로 정의를 내린 2007년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 미래가속화연구재단(ASF)의 메타버스 로드맵 보고서, 그리고 벤처 캐피털리스트 매튜 볼(Matthew Ball)의 2021년 저서 ‘메타버스(The Metaverse: And How It Will Revolutionize Everything)’는 메타버스에서 사이버 공간과 물리 공간이 융합될 것을 요구한다. 메타버스의 실감 공간에서의 물리적 경험이 실감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가상공간의 활동이 물리공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물리 컴퓨팅이 필요하다.

사물통신, 의료사물통신, 산업사물통신 및 농업사물통신 기술은 특정 정보를 감지하고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물을 틀거나 온도를 조절하며,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거나 광학 센서로 물건을 분류할 수도 있다. 스마트 로봇은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주변환경을 인지하고 특정한 물리적 활동을 한다. 요리를 하거나 물건을 정리하고, 혹은 외장 로봇으로 건설현장이나 장애인의 활동성을 높일 수 있다. 이들 모두 물리 컴퓨팅에 해당한다. 20세기와 21세기 초반기에 디지털은 서버,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 속의 손톱만 한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에 머물러 있었으나, 21세기 중반기부터 디지털은 물리 세계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다. 인간과 인간의 욕구 대부분이 물리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리 컴퓨팅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물리 컴퓨팅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컴퓨터, 기계공학, 전자공학 중 하나만 배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모두를 한 사람이 배우고 융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개방형 플랫폼을 요구한다. 개방형 플랫폼이란 정보공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의미한다. 일종의 다학제적, 간학제적 체계를 뜻한다. 문제는 다학제적, 간학제적 접근도 쉽지 않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우선 초중고에서 디지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과목이 확장되어야 한다. 컴퓨터 코딩 교육은 단순 코딩에서 물리 컴퓨팅 코딩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 마이크로 컨트롤러인 아두이노를 이용한 실습이 일부 진행되기는 하는데, 이를 전방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인공지능 교육과 물리 컴퓨팅의 연계가 가능하며, 그 응용 분야를 확대할 수 있다.

대학에서는 물리 컴퓨팅과 관련된 다학제적, 간학제적 플랫폼을 설계해야 한다. 교수의 성과평가에 다학제적 연구 항목을 반영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창조적 혁신가를 길러내는 스탠포드 대학의 디스쿨(d.school)과 같이 다학제적 연구를 위한 공간구조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비정부기구, 기업 및 정부 현장은 물리 컴퓨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워크숍과 작업반을 활성화해야 한다. 현장의 요구와 대안을 물리 컴퓨팅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보니, 디지털 격차가 아니라 지식 격차가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산업사회 세대와 디지털사회 세대가 공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생교육 체계가 잘 정착되더라도 지식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개개인의 내적 성찰과 비판적 사고 그리고 부지런함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 모두 구두를 벗고 마라톤 운동화로 갈아 신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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