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5억 손실·시급 9500원·하청의 하청…누구도 실익 없는 대우조선해양 파업

입력 2022-07-2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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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21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공권력 투입 카드로 막판까지 기로에 섰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 사태가 22일 51일 만에 마무리됐지만 K-조선업의 숙제를 남겼다. 이번 주말께 공권력 투입이란 최악의 상황을 목전에 두고 분수령으로 삼았던 이날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했으나, 실익을 거둔 쪽은 누구도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우조선 하청 노사는 오전 9시 협상을 재개해 오후 4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는 총회를 열고 합의안을 가결시켰다. 이로써 31일간 이어진 1독(dock, 선박 건조장)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점거 농성도 마무리됐다. 권수오 대우조선 사내협력사협의회장과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노사 양측을 각각 대표해 협상 결과 브리핑을 열고 타결 소식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대우조선 하청 노사는 임금 4.5% 인상에 합의했다. 또 설, 추석 등 명절 휴가비 50만 원과 여름휴가비 40만 원도 지급하기로 했다.

하청노조의 파업은 2016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불황을 이유로 30% 넘게 삭감된 임금을 원상 회복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올해 임금 인상율을 두고선 하청노조 측이 큰폭으로 요구를 낮춰 결국 사측의 안(4.5%)에 합의했다. 이외에도 기존 요구안인 상여금 300%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사무실 제공 등도 모두 관철되지 못했다.

가장 걸림돌이었던 손해배상 부제소 또한 미결로 남았다. 노조 지도부를 대상으로 민, 형사상 소송 면책 여부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해 갈등의 불씨를 남긴 셈이다. 폐업 사업장에 근무했던 조합원 고용 승계도 완전히 보장받진 못했다. 노사는 노조가 요구했던 직고용 형태가 아닌 내용적 측면에서 고용이 가능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으로 고용 승계를 약속한 수준에 그쳤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피해도 막대하다.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7월 근무일수 마지막일인 이날 기준 파업 관련 전체 피해액만 8165억 원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매출 차질 6468억 △고정비 지출 1426억 △지체보상금 271억(11척) 등이다. 대우조선해양 원청은 이튿날인 23일부터 2주간의 여름휴가에 돌입하기 때문에 7월 마지막 근무일수는 22일로 집계된다. 파업 사태 이후 회사는 일 평균 259억 원의 매출 감소, 일 평균 57억 원의 고정비 지출, 일평균 4억 원의 지체보상금 등 손실을 쌓아갔다. 6월 말 기준으로는 총 2894억 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했다. 8월 말까지 파업이 지속될 경우 총 1조3590억 원의 손실이 추정됐던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추후 공정을 통해 만회할 경우에도 공정 지연과 물류 혼잡으로 직, 간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선수금 및 인도대금 지연에 따른 유동성 악화 또한 발생됐다는 설명이다.

▲원청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와 협력업체 대표가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에서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맞불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의 채권단 최대주주(지분율 55.7%)인 산업은행이 일절 추가 지원을 하지않겠다는 방침까지 내세우면서 파업 과정 막판에 파산론까지 대두됐다. 2000년 이래 투입된 공적자금만 12조 원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조7546억 원의 영업손실, 올해 1분기 4701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영업익 컨센서스 역시 5000억 원대 손실이 추산됐는데, 여기에 파업 손실(7월 말 기준 8165억 원)까지 반영하면 영업손실은 6000억~9000억 원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추가 대출 등 자금지원이 없다면 올해 말 유동성 위기가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파업 현장에 ‘공권력 투입’ 가능성으로 압박하면서 정계, 시민사회단체까지 반발하는 등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불법 파업'으로 떠들썩한 데 반해, K-조선업의 미래 재건에 대한 고민은 엿보이지 않았다.

2020년 하반기부터 수주 호황을 맞이한 조선업은 전세계 수주량 1위를 탈환했지만 저임금 탓에 이미 인력난은 가중된 실정이다. 원청은 하청과 재하청을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넘기는데, 원하청 관계가 구조적 문제에 갇혀 실질적 교섭, 임금 격차 등에서 고질적인 문제를 떠안고 있다. 여기에 원청 노조인 대우조선지회와 하청노조 간 이른바 ‘노노갈등’까지 비화했다. 정부나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등 누구도 직접적인 중재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근시안적인 처우개선을 넘어 다층적인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해법이 요원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 단장을 맡은 우원식 의원은 “2016년 이후 현장을 떠난 사람이 7만 5000명”이라며 “5년 된 발판 기술 근로자의 시급이 9500원이다. 똑같은 기술을 갖고 있던 분이 과거 4300만 원 정도 받았는데, 지금은 3000만 원 정도로 30% 이상 깎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종전대로라면 23일부터 하계휴가에 들어가는 대우조선해양은 지연된 생산을 만회하기 위해 상당수 인력이 출근해 진수 작업을 비롯한 각종 공정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업 과정에서 유최안 하청지회 부지회장 등이 점거한 옥포조선소의 1번 독은 조선소 내 독 중 최대 규모로, 생산능력의 절반을 담당한다. 경남 거제경찰서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하청노조원 9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협력사 대표들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악수하고 있다.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왼쪽)와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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