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빚투개미들의 꿈과 허상

입력 2022-07-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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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1600년 발간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소재는 ‘빚’이다. “전 재산이 혈관 속을 흐르는 피뿐”이라고 고백하는 바사니오는 구혼을 위한 여행비용이 다급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빌리려 하자 보증을 요구했고 친구인 해운업자 안토니오가 나섰다. 샤일록은 기한을 어기면 1파운드의 생살을 도려내도 좋다는 서약을 요구했고 안토니오는 운항 중인 선박이 도착하면 돈이 넘친다며 이를 거만하게 수용했다. 선박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로 그는 기한을 지키지 못했고 샤일록은 서약 집행을 요구했다. 소설 속 재판관으로 나선 포샤는 명판결을 내린다. “계약대로 살덩이 1파운드를 가지시오, 다만 그걸 잘라낼 때 피를 단 한 방울만 흘려도 당신 땅과 재물은 베니스 국법에 따라 몰수될 것이오” 샤일록은 집행을 포기했다. 결국 권선징악 판타지로 끝났지만, 초반의 돈거래는 매우 현실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빚의 위험이 전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큰 소리치며 주식시장을 제 집처럼 누비던 동학개미가 포샤 없는 안토니오를 연상케 한다. 상당수 개미(개인투자자들)은 ‘자산의 역습’에 손놓고 당할 처지다. 올해 들어 증시, 코인은 물론 안전자산으로 꼽혔던 금, 부동산까지 급락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수년간 호황을 누렸던 자산 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에 얼어붙었고, 투자자들은 자산 가치 하락과 이자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지난 2년여간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재정을 풀어 경기를 지탱했고, 풀린 돈은 자산 시장을 떠받쳤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찾아오며 각국 중앙은행은 돈줄을 죄고 있다. 지난달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 포인트 인상)을 밟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 달에도 같은 보폭으로 발을 내디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지금 이시간에도 자산가격은 뚝뚝떨어지고 시장 금리는 뻣뻣하게 고개를 처들고 있다.

과연 ‘개미귀신’(넘이는 유동성과 탐욕)이 파놓은 ‘개미지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전남 완도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 양 일가족 사망 사건은 ‘빚투 개미’에 닥친 어두운 그림자의 한 면이 아닐까. 조양 부모는 송곡항 일원에서 마지막 생활반응을 보이기 전까지 암호화폐인 ‘루나 코인’을 여러 차례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암호화폐 투자 실패가 일가족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 몬 배경 가운데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조양의 부모처럼 적잖은 개미들은 자산 거품이 꺼지고 금리가 더 오른다면 버틸 여력이 많지 않아 보인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데이터를 토대로 자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잠정)은 지난해 206.6%를 기록했다. 2019년 188.2%에서 2020년 198.0%, 지난해 206.6%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가처분소득이란 가계가 번 소득에서 세금, 이자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소비, 저축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소득 범위를 의미한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2030’은 우려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755조8000억 원에 달한다. 차주 수는 1989만4000명이다. 이중 30대 이하 비중이 26.2%에 달한다. ‘벼락거지(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갑자기 거지 신세가 된 무주택자)’신세가 된 청년들과 ‘상승장에서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에 빠진 2030세대들이 묻지마 투자에 나선 결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30대를 중심으로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LTI)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청년층의 취약차주 비중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며 “이런 증가세가 지속되면 채무상환 능력이 약화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허황된 꿈을 쫓는 ‘안토니오 개미’가 많다. 주식커뮤니티를 보면 대다수 ‘빚투족’은 “시간이 무기다”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라는 공식은 신념이 됐다.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모두 장기적으로는 우상향했다는 ‘경험칙’때문이다. 5만원대로 주가가 추락하는 와중에도 15조원 어치를 사들인 ‘삼전개미’(삼성전자 주식투자자)가 이를 말해준다.

세상에 착한 부채는 많지 않다. 빚은 무겁고 무서운 짐이다. 저금리 시대엔 이자 부담이 적지만, 지금처럼 시장금리가 치솟고 경기는 뒷걸음 하는 상황에서는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들다. ‘영끌’해서 집을 사거나 빚투로 주식에 몰빵하려고 끌어다 쓴 돈은 자칫 낭떠러지로 내몰 수 있다. 거품이 꺼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특히 빚으로 쌓아 올린 거품이 꺼질 때 충격은 상상이란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퀸스 대학교에서 재정학과 재정사를 가르치는 존 D.터너와 경제학 교수인 윌리엄 퀸이 ‘버블: 부의 대전환’이란 책에서 경고한 “버블에 올라타거나 버블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건 대다수 투자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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