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중소기업이 가업승계를 해야만 하는 이유

입력 2022-07-01 05: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중소기업에 가업승계는 숙명과 같다. 어느 중소기업이건 언젠가 반드시 가업승계의 고비에 부딪힌다. 기업인도 사람이라 나이 들어 노쇠하면 은퇴하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경영자가 은퇴한 이후에 중소기업이 계속 운영되려면 자녀가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한다. 문제는 가업승계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중소기업의 경영이 불안정해지고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우선,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세가 큰 부담이다.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이고, 최대주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20% 할증과세가 적용되어 60%로 올라간다. 중소기업은 주식 상속이 대부분인데, 자산의 60%가 상속세로 나가면 승계 후 반 토막 난 상태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자본축적이 빈약한 중소기업은 가업승계 시점 전후에 상속제 재원 마련을 위해 미래경쟁력을 위한 연구개발(R&D)이나 설비투자를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과세특례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사전·사후요건이 까다로워 활용 실적이 미미하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높고 과세특례요건도 엄격한 이유는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상속재산을 불로소득으로 간주하여 상속세율 자체가 과도하게 높다. 뿐만 아니라 사업자산을 부동산이나 현금성 자산보다 더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주식 상속에 대하여 할증과세한다. 중소기업계는 가업승계가 ‘고용과 기술의 전수’이기 때문에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달라고 꾸준히 요청하여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혹자는 중소기업인이 왜 혈연인 직계 후손에게만 승계하느냐고 질문한다. 재벌 대기업의 경영권 세습에 대한 반감이 중소기업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대목이다. 직계가 아닌 제3자에게 기업경영을 승계하란 이야기는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다. 대기업은 경영자원을 가족 외부에서 찾아 활용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가족 내부 구성원에 의존해야 하는 본질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나오는 소리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인적 자원의 확보에 있어 차원이 다르다. 대기업은 입사경쟁부터 100대 1을 넘을 정도로 인력이 몰린다. 입사한 직원 중에서도 임원이 되는 비율은 100의 1도 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과 체계적 선발 과정을 통해 능력이 검증된 소수의 인재에게만 경영자 역할이 주어진다. 기존의 사내 임원만으로 부족할 경우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경영자원을 보충할 수 있다. 대기업 소유주 입장에서 직계 후손이 아니더라도 경영자 후보를 얼마든지 골라 쓸 만큼 충분한 인적 자원이 가용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처럼 우수한 경영 인재를 골라 유치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기능직이나 관리직 인력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에 기업경영을 책임질 인재를 찾아 승계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내부적으로 키울 인력이 없을뿐더러 외부에서 경영전문가를 채용해 맡길 형편이 안된다. 이런 점에서 중소기업에 남겨진 유일한 경영자원은 직계 후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인재 풀뿐 아니라 경영시스템에서도 차이가 난다. 대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조직구조로 운영되므로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관리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일체화되어 있어 경영자를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이 취약하다.

중소기업이 경영 선진화를 위해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여 경영권을 부여했다가 갈등과 분쟁에 시달린 사례는 많이 있다. 단순히 경영능력만 우수하다고 시장에서 인재를 영입하여 채용하는 것은 경영승계가 아니라 경영단절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심지어 직계 후손에게 가업승계하고 난 이후에 경영철학과 방침이 서로 달라 갈등을 빚는 경우도 빈번하다. 선대 기업인과 후세 경영자가 사업전략과 임직원 인사를 놓고 의견이 달라 반목하다 의절한 사례도 있다.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는 단순한 자산의 상속이 아니다. 창업가의 경영철학, 기업가정신, 조직문화가 전승되는 고도의 지속가능 경영 행위이다. 오랜 기간 소통하고 교류하며 가업승계를 준비시킬 수 있는 인재는 가족에게서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요즘 쉽지 않다. 최근에는 직계 후손도 골치 아픈 기업경영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업승계를 못 하면 매각을 해야 하는데, 중소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제값을 받기 어렵다. 사모펀드가 우량 중소기업을 인수하여 경영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모펀드의 목표는 기업가치를 올려 재매각하는 것이지 지속가능성에는 관심이 없다. 고령화되어 은퇴를 앞둔 중소기업인이 늘어나는 시기에 중소기업의 백년대계를 위해 가업승계를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