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세금과 사회] 무엇을 위한 가업상속공제인가

입력 2022-06-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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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교수,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일반적인 정부들은 경제위기에서 중저소득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를 선택한다. 대조적으로 소득 최상위 계층에게 유리한 감세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유니크한 점이다. 법인세율 인하는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상위 1% 계층에게, 종합부동산에 대한 감세는 고가주택 소유자들에게, 그리고 상속증여세 인하는 역시 자산 상위계층에게 혜택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들의 계좌에 소비로도 투자로도 사용되지 않고 고여있는 여분의 자금을 더 늘려주는 것이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설명은 매우 부족하다.

추경호 장관은 상속세율 수준이 일본 다음으로 높아서 기업의 유지가 어렵다고 걱정이 많다. 소득과 자산의 계층간 격차 심화의 심각성과 파장을 주무장관이 제대로 인지한다면 이처럼 맥락을 거꾸로 가는 정책 제안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계층간 격차 확대와 계층 고착에 상속자산의 역할이 크다. 경제적 능력의 평가기준으로 자산이라는 척도를 소득 못지않게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산 및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이다.

추경호 장관은 가업상속공제의 확대를 특히 주장하고 있는데, 바로 한국의 기업 오너들이 가장 전력을 다하고 있는 대정부 로비 항목이다. 낮은 수준의 법인세 실효세율의 혜택으로 내부에 유보하고 있던 기업 소득을 자식세대에게 온전하게 물려주고 싶으나 상속세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부는 오너 혼자서 일군 것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가 그리고 근로자가 같이 만들어낸 것이고 상속세를 통하여 그 몫을 같이 나눈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기여한 바가 없는 자식세대가 기업의 부를 독차지하는 것이 어떤 근거에서 정당하다는 것인가?

가업상속공제는 매우 예외적인 제도이다. 가업의 원활한 승계를 지원하여 해당 기업의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조세공평성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훼손하면서 예외를 만든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서 일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제도 도입의 취지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조세공평성에 위배되는 예외적 제도이므로 도입 목적에 부합하는 대상에 한해서만 세제상의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가업상속공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공제대상 기업이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라 ‘가업’이어야 한다. 가업은 가족에게 승계되지 않으면 기업의 경쟁력 유지가 어려운 소규모 기업을 말한다. 그리고 상속인에게 기업의 지분 이외에 다른 자산이 없거나 부족하여 상속세를 부담할 능력이 없어야 한다. 만약 다른 금융자산, 부동산자산 등을 매각하여 상속세를 납부할 여력이 있는 경우 공제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가업을 승계한 이후 상속인은 일정 기간 가업 승계 이전과 비교해서 동일한 또는 그 이상의 고용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제도는 독일에서 먼저 시행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뒤따라 도입하였다. 독일에서 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가 우리에게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2014년 12월 17일 독일 헌법재판소는 기존의 가업상속공제제도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의 취지에 따라 독일 정부는 2016년에 새로운 법안을 마련하였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기업이 가진 자산 중에서 비사업용 자산은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모두 제외한다는 것이다. 임대부동산, 주식이나 지분 등 투자자산, 미술품, 모든 종류의 유가증권, 자산 전체 가액의 15%를 넘어서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비사업용 자산에 해당한다. 기업의 전체 자산 중 이러한 비사업용 자산의 비중이 50%를 넘으면 가업상속공제대상에서 제외한다.

상속기업의 자산이 2600만 유로(약 400억 원) 이상이 되는 경우, 상속인의 신청에 따라 과세당국이 상속인의 상속세 납부 능력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다. 상속인은 자산공제대상 상속자산에 대한 상속세액이 상속인의 가용자산으로 지불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상속인의 가용자산은 공제대상 상속자산 외 상속자산과 상속세의 발생 시점에 상속인에게 속하는 모든 자산을 포함해서 계산한다. 과세 당국의 조사 및 심사 결과 상속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가용자산으로 지불이 불가능한 부분에 대하여만 상속세를 경감해준다. 상속되는 기업의 자산가치가 9000만 유로(약 1100억 원)가 넘으면 상속인은 공제를 신청조차 할 수 없다.

독일에서 자산 가치 2600만 유로 미만의 소규모 기업 위주로 가업상속공제를 허용하는데, 이러한 기업만이 가족 내부에서 운영권이 이전되어야 경쟁력이 유지되고 고용 유지가 가능한 가업이라고 보는 것이다. 규모가 큰 기업은 소유자 가족이 경영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이 운영하여도 기업이 경쟁력을 잃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이미 지나치게 높은 수준에 있는 가업상속공제 허용의 매출액 기준을 1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것인데 이는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거꾸로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수준이 높은 독일과 비교해도 공제대상 기업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사후관리 요건도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겠다는데, 공평성의 훼손에도 불구하고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가업상속공제의 기본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조처이다. 5년은 매우 짧은 기간으로 이 기간만 고용을 유지하는 시늉만 하면 그 뒤 무슨 짓을 하여도 가업상속공제의 혜택은 상속인에게 귀속되게 된다.

가업상속공제제도는 기업의 고유한 생산적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자산에 대하여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상속인이 다른 금융이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른 자산이 없는 경우에만 공제를 허용해야 한다. 제도에 이러한 조건이나 심사 규정이 없으니 현재의 우리나라 제도는 위헌적이다. 상속증여세는 경제의 ‘세습자본주의화’를 방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도 중의 하나이다. 경제적 효용이 증명되지 않았고 그 혜택이 일부 특권층에게만 귀속되는 가업상속공제제도는 폐지하거나 그 요건을 대폭 강화하여 가업상속공제의 원래 취지에 부합되는 경우에만 허용해 주어야 한다. 일반적인 기업 상속에까지 가업상속공제를 보편적으로 허용할 경우 법 논리적인 측면에서 위헌에 해당할 뿐 아니라 벤처기업 및 창업을 지원하여야 하는 혁신성장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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