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으로 세상 읽기] 전략이 없는 게임을 거듭하는 한국 축구

입력 2022-06-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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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주말 저녁 AFC U23 아시안컵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한일전이기도 하고 8강 경기인 만큼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경기였다. 한국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상당히 뛰어나 보였다. 드리블이나 패스 능력을 성인 대표팀과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0대 3 패배. 경기 내용은 더 무기력했다. 골대로 향한 슈팅은 90분 동안 단 2개에 불과했다. 2020년 대회 우승팀인 우리나라가 4강 진출에도 실패한 것이다.

경기 후 많은 축구 팬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전략·전술의 부재를 지적했다. 개인 선수들의 기량이 부족했다기보다는 그들의 기량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스포츠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전략에 대한 최적대응(best response)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축구 전략은 이러한 최적대응 전략 선택의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1990년대 초 네덜란드의 전원공격·전원수비 토털사커가 돌풍을 일으키자, 1990년대 중반 이탈리아가 강력한 카테나치오 빗장수비로 그에 대응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수비전술을 깨트리는 스페인의 티키타카 축구가 유행했고, 2010년대 들어 게겐프레싱 압박축구로 패스를 차단하는 독일 축구가 힘을 얻었다.

유럽축구가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쟁력이 높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리그와 유럽클럽대항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 속에서 최적 대응 전략을 찾아가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클럽팀에서 발전한 전략은 경험 있는 선수와 지도자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국가대표팀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의 축구리그인 K리그를 응원하는 많은 이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것이 전략과 전술의 부재이다. K리그 클럽들이 리그 안에서만 통하는 ‘이기기 전략’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K리그의 많은 팀들이 사용하는 키 큰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향한 얼리-크로스(early-cross) 전략은, 수비수의 신체조건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세계무대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오래된 전략, 즉 절대 최적대응이 아닌 전략(never-best response strategy)으로 취급받고 있다.

물론 승리를 하고자 하는 프로팀의 목적함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경기의 승리만을 목표로 하는 단기적인 ‘이기기 전략’에만 몰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무대에서는 이미 고루한 전략으로 취급되는 그 ‘이기기 전략’을 사용하는 팀들이 여전히 많이 있고, 그에 대한 최선대응 전략조차 고민하지 않는 것을 보면, K리그의 전략 수준을 비판하는 팬들의 아우성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몇몇 팀들은 외국인 감독은 선임하고 선진 축구를 도입하려 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리그 전체, 그리고 대표팀의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그것을 연구하는 축구 코치 육성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그의 의지, 그리고 축구협회의 의지가 중요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해외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박지성은 “코치가 되는 것과 선수가 되는 것은 완벽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며, 한국 축구행정 체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선수를 키워내고 경기장의 시설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진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 그리고 그런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는 행정가를 양성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퍼거슨 경이나 무리뉴 감독과 같은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닌 전문 감독이 국내에서는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손흥민 선수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득점왕이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는 이렇게 수준 높은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지도자를 키워 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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