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수요자 중심 정책 설계해야…전문성 제고 위해 인사제도 손질할 것"

입력 2022-06-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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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로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각별히 당부했다.

이 총재는 10일 '한국은행 창립 제72주년 기념사'를 통해 "우리 경제는 방역조치 완화와 경제활동 재개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경기둔화,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가속화 등으로 글로벌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도 나오고 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향후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trade-off)가 더욱 커지면서 통화정책 운영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어 한은의 통화정책 운영과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성이 시험대에 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2~3% 수준의 오름세를 나타냈을 당시 우리가 다른 나라 중앙은행보다 더 먼저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돌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정상화 속도와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더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어 "먼저 출발한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실기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정책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금리인상으로 단기적으로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겠지만, 자칫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욱 확산된다면 그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라며 "성장과 물가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정책운용의 민첩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 상황 변화에 따른 유연성도 함께 높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구조적 변화에 대한 준비도 당부했다. 친환경·디지털전환 가속화, 국제정치의 분열 및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구고령화 등에 따른 경제의 구조변화 등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경제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우리의 정책운영에 어떻게 반영해 나갈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대외적 여건뿐 아니라 조직 내부에 숙제를 남기기도 했다. 조직 운영의 개선을 요구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높은 만큼, 정책 수립만큼이나 주요한 사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한은의 조직문화에 대한 여러분의 자부심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조직문화가 개개인의 훌륭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조직의 변화와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표출된 것"이라며 "부임 이후 추가 논의를 거쳐 경영인사 혁신안이 마련되기에 이르렀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경영인사 혁신방안 자체는 하나의 제도적 수단일 뿐"이라며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 혁신방안도 공감과 인식 전환이라는 소프트웨어의 변화 없이 하드웨어만 바꿔서는 성공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은 조직문화에 대한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부서 간 협업을 가로막는 높은 칸막이와 경직된 위계질서로 인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변화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은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외부와의 소통에도 소극적이며 너무 조용하다는 평가가 있다"라며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수직적 내부지향적 조직문화’를 ‘수평적 외부지향적 조직문화’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첫 대안으로 무엇보다 구성원간 소통의 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서로 존중하면서도 업무에 관한 한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조직 내 집단지성이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하자"라며 "부서장이 주제를 제시하고 실무자가 이를 문서화한 이후에야 논의를 시작했던 업무 방식을, 이제는 글을 쓰기 전에 충분히 난상토론을 벌인 후 모아진 중론을 문서화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보자"라고 제언했다.

이어 "저 또한 조사역이 저와의 점심 자리에서 “지난번 총재님 연설문은 실망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경직된 위계질서를 없애는 데 앞장서겠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 정책서비스의 방향을 손질하자는 주문도 함께였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 정책서비스의 최종 수요자는 팀장도, 국장도, 총재도 아닌 바로 외부의 경제 주체들"이라며 "수요자 중심의 ‘고객 마인드’가 없다 보면 아무리 많은 보고서를 만들어도 외부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찾지도 않는 내부용 보고서에 그치고 만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은행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행여 정책적 함의나 대안 제시가 불러올 논쟁을 피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현황에 대한 단편적, 기술적 분석으로만 끝내려는 경향은 없었는지 자문해보자"라고 덧붙였다.

인사평가 제도를 손질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이 총재는 "외부의 수요자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개인의 전문성이 전제돼야 하며 이를 인정하고 평가해주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라며 "앞으로는 직원 개개인의 인사자료에 그간 근무한 부서뿐 아니라 그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개인의 구체적인 성과가 기록되게 해 평가 정보가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2400명이 넘는 우리 조직에는 다양한 직무와 직급이 있는 만큼, 어느 자리에 있든 소외되지 않도록 처우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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