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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보고 있나, 586 삼각빤스 아재

입력 2022-05-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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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정치경제부 부장

뒤룩뒤룩 늘어만 가는 뱃살 좀 빼보겠다고 수영장에 등록한 첫날, ‘이제 나도 박태환급 복근인가’ 뿌듯해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옆에 서 있던 낯선 아재가 말을 걸어왔다. 인사도 자기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그가 던진 한마디는 “안 불편해요?”. 뭘 물어보는 것인지 생각하는데 2~3초, 욱하는 승질 다스리는 데 또 몇 초가 걸렸다. 전형적인 586세대로 보이는 그는 동남아 해변에서나 어울릴 형형색색 반바지 수영복이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실내수영장에서 슈퍼맨 쫄쫄이에 받쳐입은 삼각팬티 수영복이 정석인 건 안다. 그렇지만 평범을 거부하는 X세대는 수영복도 남달라야 한다. 야자수 야무지게 수놓은 형광 수영복 정도는 입어줘야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터질 듯 꽉 끼는 삼각빤스가 누구한테 훈계인가. 그리고 수영복으로 누굴 두들겨 패기라도 했나, 피해 준 것도 없는데 왜 간섭인가. 빛의 속도로 자기합리화 회로를 돌린 뒤 살인미소를 머금고 세상 고마운 척 응수했다.

“불편하죠. 남의 장롱 속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꼭 있거든요.”

얼른 옷 주워 입고 내뺀 뒤 다시는 그 수영장 근처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절대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이겼다. 아무튼 이겼다.

정치권에서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의 진퇴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그들을 찬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박멸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각자 옳다고 믿는 이유는 제각각일 테니 그건 자기 가치관대로 살자.

다만 그들이 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를 586세대 바로 아래인 597세대(50대, 90년대 학번, 70년대 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다. 똑같이 쉰내 풀풀 꼰대가 어디서 자기소개를? 어허, Z세대M세대와 한데 묶이는 것을 얼마나 극혐하는지 아시나? 86과 같이 학교를 다녔을 뿐 엄연히 97이다. 앞자리 뒷자리 다 다르다. 무조건 다르다. 다르다고! 절대 화낸 거 아니다. 아니라니까!

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86정치인들은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이 틀림없다. 알면서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닌 듯하다. 그러니 ‘왜?’라는 생각을 해볼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암흑 세상에 빛을 되찾아온 슈퍼 히어로가 그들의 유니버스이며, 언제든 돌아올 빌런에 맞서려면 매트릭스에 갇힌 어리석은 이들을 깨워야 하는 것이 그들의 시대적 사명으로 보인다. 민주화로 봉인한 줄만 알았던 독재세력이 20여 년 만에 부활해 국정을 농단하는 거짓말 같은 현실. 사투 끝에 마법의 촛불로 최종 보스를 가두고 172석 토르의 망치를 손에 쥔 것이 불과 2년 전 아닌가. 그들의 재림을 막아내려면 일깨우고 설득하고 가르치고 계몽하고 깨우쳐주고 각성시켜야 한다. 도르마무~ 도르마무~.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선동, 좋게 말해도 오지랖이고 잔소리다. 86이 혐오 내지 조롱의 대상이 된 건 이런 이유가 큰 건 아닌가 싶다. 그들은 타인의 삶에 끼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의 생각을 간섭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이 중심인 단일대오, 깨어있는 자신과 같은 생각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자 세상을 바꿀 동력이라고 믿는 듯하다. 길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5년, 가깝게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2년 전부터 정치가 개인의 삶에 귀찮다 못해 불쾌하게 개입해온 이유라고 봐도 될 것 같다. 86에 대한 비난은 ‘이제 그만 내 인생에서 나가 달라’는 요구로 읽힌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법무부 장관 이름 따위 외우고 싶지 않다는 거부 의사이며, 집 살까 말까 각을 재는데 세법과 임대차법은 왜 알아야 하는지 짜증 난다는 거부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니 강철대오에서 이탈해 옆길로 새든, 민영화는 모르겠고 영화 보며 데이트나 하든 86들은 제발 신경 좀 꺼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아예 꺼지라는 반응을 부르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이~ 보고 있나, 수영장 삼각빤스 86아재? 나다, 야자수 수영복. 아래위 잔망루피 래시가드 입고 돌아간다. 딱 기다려.” w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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