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20. 흔들리는 G20 체제

입력 2022-05-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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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침략으로 혼돈의 세계, EU 등 권역별 해법 찾기
미국의 ‘러시아 배제’ 전략…미ㆍ중 사이 한국의 선택은

지난달 20일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는 중이었다. 러시아의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이 화상회의에서 말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몇몇 참석자들이 카메라를 껐다. 미국의 재닛 옐런과 캐나다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재무장관이 보이콧을 이끌었고 프랑스와 영국 등도 동참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며 러시아를 G20 체제에서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G20 체제가 확립된 2008년 정상회의 개최 후 14년 만이다.

2008년 11월 말 미국발 경제위기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G20 정상회의가 처음 열렸다. 1999년부터 개최된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 정상회의가 추가됐다. 이후 G20 체제는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글로벌 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으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이런 다자주의 기구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우리도 G20 회원국이기 때문에 G20 체제의 유지와 적절한 역할 수행이 우리의 국익이다. 경위를 한 번 살펴보고 대책을 강구해 보자.

올해 G20 의장국, 곤혹스런 인도네시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미국은 전방위 제재를 부과하며 러시아를 압박해왔다. 러시아의 G20 퇴출 전략도 미국에서 시작됐다. 3월 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G20에서 배제되어야 합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명확하게 답했다. 직후 서방 선진 7개국(G7)도 성명서를 내고 “국제기구나 다자포럼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러시아와 함께 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은 올해 G20 의장국을 맡은 인도네시아(이하 인니)를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지난달 재무장관 회의에서 의장국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은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러시아 재무장관이 발언할 때 자리를 지켰다. 러시아는 이번 보이콧에 대해 G20을 정치화한다고 비판했다. 의장국 인도네시아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의장국의 주 업무이다. 인니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일본의 일간지 ‘닛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G20은 국제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이지 정치적 모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지만 인니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교량 역할을 자처하며 의장국으로서의 면모를 국제무대에서 선보이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차원의 협력 필요한데…

올해 11월 15일부터 이틀간 발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인니는 글로벌 보건 협력의 틀 확립,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디지털 경제 변환이라는 세 가지 우선순위를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작일 뿐이고 언제 유사한 팬데믹이 우리를 덮칠지 모르기 때문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협력은 매우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디지털 경제 변환도 마찬가지로 글로벌 차원에서의 공조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이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G20 체제 운영을 위험에 빠트렸다. 팬데믹이 일깨워 주었듯이 국제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공동 이슈를 해결하는 데 글로벌 협력의 필요성은 더 커졌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간다.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으로 국제사회의 양분은 격화하고 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 안에서의 공급망으로 재편 중이다.

인니 정부는 발리 정상회의에 이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초청했다. 인니 주재 러시아 대사는 푸틴이 회담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참여를 배제하려면 G20 다른 회원국의 합의가 필요하다. 중국과 인도가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참석을 막을 수 없다. 중국 외교부는 “G20에서 러시아는 중요한 회원국이라며 그 누구도 회원국의 지위를 박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11월 발리 정상회의는 자칫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참여하는 회의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국 주도의 G7 국가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일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별도로 회담을 열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0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의 발언이 시작되자 회의를 보이콧하고 퇴장한 서방 측 장관들. 왼쪽 네 번째부터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한 사람 건너 보이콧을 주도한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출처 프리랜드 재무장관 페이스북

한국, G20 내 위상·발언권 커져

2010년 11월 1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렸다. 우리가 중견국으로서 국제무대에 데뷔한 회의다. G7 회원국이 아닌 우리는 지구촌이 직면한 국제문제에 발언이나 참여 기회가 적었다. G20 회원국이 되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개발협력을 의제로 제시했다.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한 경험을 살려 우리가 제시한 개발협력 의제는 G20에서 계속해 추진됐다. 강대국도 소국도 아니지만 모든 나라가 직면한 국제문제를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중견국이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G20 회원국은 전 세계 경제력의 80%를 차지한다. G7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하락한 반면, 브릭스(BRICS)를 포함한 G7이 아닌 G20 회원국의 경제력 비중은 점차 커졌다.

우리는 의장국 임무 후 G20 체제의 발전을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 왔다. 2013년 G20에서 G7이나 브릭스에 속하지 않는 회원국들의 비공식연합체인 ‘믹타(MIKTA)’ 발족을 제안하고 성사시켰다. 멕시코와 인니, 우리나라, 터키, 호주가 믹타의 회원국이다. G20의 분열이 아니라 G20 안에서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5개 회원국이 순번제로 의장국을 맡으며 비공식 협의와 협력을 쌓아왔다.

우리가 제안한 믹타 활용·EU와 협력

우리는 이 믹타를 적극 활용해 G20 체제의 유지와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믹타 회원국 가운데 러시아의 배제 전략에 대해 호주는 미국을 적극 지지한다.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우크라이나 침략을 “국제적인 법치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라 맹비난했다. 반면에 멕시코와 인니, 터키는 러시아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다.

푸틴은 침략자이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화협상을 통한 전쟁의 종결이 최상의 시나리오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믹타라는 틀을 이용해 러시아와의 대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공동 대응해야 한다. 우리 혼자 대응하기에 너무 벅차고 실효성도 없기 때문이다.

또 EU와의 협력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EU는 국제기구 가운데 유일한 G20 회원이다. EU 27개 회원국은 러시아 주요 은행에 대한 제재, 석탄 수입 제재와 같은 공동제재를 실행 중이다. EU는 그러면서도 다자주의 질서 유지를 지지한다. 미국과 중국의 G2가 아닌 블록으로서 다자질서가 원만하게 유지되는 게 EU에게 실익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침략 때문에 올해 EU 27개국은 최소 1%포인트 넘는 성장률 둔화가 예상된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EU 주요 회원국들도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희생을 줄이고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평화협정의 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EU 및 EU 주요 회원국과 긴밀하게 공조해야 한다.

‘낀’ 나라 한국, 다자주의 외교가 유용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에게는 점차 정책적 선택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자주의 기구의 활용은 우리 외교정책에 유용하다. 다자주의는 양자외교의 보조 수단이 아닌 필수적인 동등한 외교정책의 카드이다. G20 체제의 붕괴가 아니라 이를 유지하고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데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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