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공정한 분배의 기준

입력 2022-05-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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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서강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

공정과 정의는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의 화두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공정한 것이었는지, 장관급 고위직 인사의 자녀들이 그 어려운 의대 입시의 문턱을 손쉽게 넘은 것이 소위 ‘아빠 찬스’ 때문은 아니었는지, 특히 청년들의 분노가 컸다. 입시와 채용은 공정성에 대한 예민함이 가장 큰 분야이다. 좋은 급여에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의 채용 인원은 매우 제한적이고, 미래가 보장된다는 의대 입시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규칙이나 절차를 요구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원의 희소성 때문이다. 누구나 원하는 곳을 가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구태여 공정한 규칙은 필요하지 않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희소한 자리나 자원이 누구에게로 가야 하는가? 그 공정한 규칙이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선, 대다수의 사람들은 취업이나 입시에서 적용되어야 할 공정한 기준으로 다름 아닌 실력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쟁점은 실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차선책으로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시험에 의한 선발(채용)이다. 명문 특목고에서 내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수한 학생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서울 의대에 진학한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공직이나 공기업의 채용과정에서는 선발 시험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시험과목과 주요 내용이 공개된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여 채용 예정 인원 안에 드는 성적을 받으면 대부분 합격하게 된다.

물론 실력에도 다소간의 운은 작용한다. 시험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한두 문제의 정답과 오답이 갈리는 것은 너무 흔한데,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입시와 채용의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실력과 운이 함께 맞아야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실력과 순수한 운에서 벗어나는 요소가 개입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공정성에 의심을 품는다. 비정규직의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은 능력의 측정이 결여된 것이고, 아빠 찬스는 인위적인 개입으로 실력에 의한 선발을 왜곡시키는 것이므로 공정의 기준을 흔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입시나 채용을 벗어나 물질적 자원의 분배를 생각한다면, 사소한 우리의 일상부터 국가의 정책에 이르기까지 분배의 상황은 다양하고, 공정한 원칙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첫째, 공헌과 기여에 따른 분배를 생각할 수 있다. 한 기업에서 예상보다 많은 이익이 나서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회사의 초과이익에 기여한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개인별로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다면 직원들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 우승팀이 선수별로 팀 기여도를 평가하고 등급을 나누어 보너스를 차등 지급하는 것도 이러한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개인별로 연봉을 책정하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 공헌과 기여를 개인별로 정확히 측정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공정성의 핵심이 된다.

둘째, 욕구를 따져 재화를 우선 분배하는 원칙이다.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 손녀 둘을 둔 할머니가 있었다. 큰 손녀는 몸이 약해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 둘째 손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렵사리 비싼 바나나 한 개를 사게 되면 큰 손녀만 먹였다. 장애아를 가진 엄마가 다른 자녀의 불평에도 유독 그 아이에게 돈과 정성을 들이는 것도 인지상정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스스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국가가 기본적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이다. 다만, 공공정책에서 욕구의 원칙을 적용할 때 기여의 원칙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욕구 측정이 관건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제외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되면 공정하지 않은 제도라고 항의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측정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분배 원칙은 평등이다. 그렇기에 우리 일상에서 많이 적용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넉넉하지 않은 간식을 두고 형제가 다툴 때 엄마는 어떻게 나누어 주어야 할까? 아마도 똑같이 나누어 주려 할 것이다.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주는 것이 차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상황으로 학교장배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한 학급이 10만 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지급받았다 하자. 선수로 참여한 학생들, 혹은 골을 넣어 팀의 우승에 기여한 학생이 더 많이 받아가야 공정한 것일까? 대부분의 담임 선생님과 학급 회장은 반의 화합을 위해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상품권을 나누어주거나, 반 회식으로 그 상품권을 모두 사용할 것이다. 공정한 분배의 기준으로 무엇을 택할 것인지 합의되지 않는다면 평등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공정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국민들이 판단하는 공정한 분배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최악은 있다. 바로 사람이나 집단에 따라 분배의 기준과 원칙이 달리 적용되는 경우이다.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세대 간 공정성 문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기성세대는 고도 성장기에 자산을 일궈갈 기회를 많이 누렸고 연금도 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아갈 예정이다. 청년들은 너무나 올라버린 부동산에 망연자실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어가고, 기성세대에게 연금을 지급하느라 허리가 휠 예정이며, 자신들의 연금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적을 것이다. 과연 새 정부가 공언한 연금개혁과 부동산 정책이 세대 간 공정성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청년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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