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예람 중사' 아빠가 국회를 움직이게 하기까지

입력 2022-04-1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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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 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뒤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모씨가 방청석을 나가며 눈물을 닦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군이 창군 이래 처음으로 특검 수사를 받습니다. 4월 15일, 국회는 '고(故) 이예람 중사 특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고 이예람 중사가 세상을 떠난지 330일 만입니다. 이 중사는 지난해 3월 상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조직적인 회유와 사건 무마 압박을 받다가 지난해 5월 사망했습니다. 정치권은 '늦어서 미안하다'는 반성문을 썼고 유족은 '제2의 이중사'가 없게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투데이는 '이중사 특검법'이 본회의에 통과된 이날 국회의 시간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아빠는 검은 정장을 입고 국회를 찾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왼쪽)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故) 이예람 중사 아버지를 맞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5일 오후, 이중사 부친 이주완 씨가 검정 마스크에 정장을 입고 본회의를 앞둔 국회를 방문했다. 딸이 떠난 지 330일, 아버지의 턱에는 흰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이 중사는 여전히 국군수도병원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다. 그는 딸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을 자신의 수염을 정리하는 날로 정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국회 본청 복도에 나와 그를 맞이했다. 그는 박 비대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여러 여야 의원님들께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같이 해주셔서 뭐라고 고마움을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씨는 박 위원장과 약 40분 동안 면담을 했다.

그는 집에서 이중사를 부르는 별명인 '끄짝'을 소개하며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계속 떨렸다고 했다. 또 박 위원장에게 "(군이) 2차, 3차 가해를 해가면서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다른 부대에 가서도, 단체적이고 집단적인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며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어진 비공개 면담에선 이씨와 인권단체 관계자 측은 특검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게 해달라며 특히 '특임 검사 선정'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떨리는 손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개의를 선포하기까지 그는 안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국회는 이날 아침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저지를 호소하기 위해 김오수 검찰총장이 국회를 찾았고 오후에는 여야의 정개특위 논의가 길어지고 있었다. 본회의 개회 시간은 이날 오후 3시에서 '미정'인 상태로 순연 공지가 나오기도 했다.

이씨는 5시 개회까지 2시간을 꼬박 국회에서 기다렸다. 전날 이투데이와 통화에서도 그는 "근데, 내일 본회의에서 먼저 올려서 통과를 시켜 줄지 아니면 필리버스터를 할지 걱정돼요"라며 심정을 전했다. 그는 그간 여야 간 신경전이 고조될 때마다 법사위가 열리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했다고 했다. 법 발의로부터 310일을 기다리고 그사이 한 차례 법사위 상정 불발을 겪으면서 생긴 불안감이다.

오후 5시께, 본회의장에 여야 의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이씨는 4층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곁에는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가 함께 자리를 지켰다. 그는 박 위원장과 임 소장의 손을 꼭 잡고 본회의를 지켜봤다.

◇'초록불'에 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개의를 선포했다. 이날 본회의 첫 안건은 '이중사 특검법'이었다. "의사일정 제1항, 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이중사 특검법을 상정할 때 박 의장은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법안 제안 설명을 위해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연단에 섰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 이예람 중사의 명복을 빌며 이 자리에 나와계신 부모님을 비롯한 유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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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에 ‘찬성’을 뜻하는 초록색 불이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 '찬성'을 누른 의원들이 200명에 이르기까지 단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재석 234인 중 찬성 234인으로, 만장일치 가결이었다. 법안 통과를 선언한 박 의장은 방청석을 올려다보며 "예, 지금 방청석에는 이예람 중사 및 관계자분들께서 방청하고 계신다"고 소개했다.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군 20전투비행단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 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자 방청석에 있던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모씨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씨는 박 위원장, 인권단체 관계자와 함께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박 의장은 이씨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이 법의 통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법안 통과 후 방청석을 빠져나가면서 한동안 눈물을 닦아 냈다. 본청 1층으로 내려온 이씨를 만났을 때도 그는 계속 손을 떨고 있었다.

이씨는 이투데이와 만나 "이 순간까지 함께한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이중사 특검법'이 공론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된 지난 대선후보 TV토론을 언급하면서 "심상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 특검법 발의를 해주신 여야 의원까지 예람이에게 보내준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줘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대선 TV토론의 결실…여야, 故 이예람 중사 사건 특검 논의한다)

또 "이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특별검사가 임명돼서 예람이 자결의 진실을 확인하고 다시는 예람이와 같은 젊은 군인들의 인권이 무시된 사망이 중단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너무 늦었습니다'…반성문 쓴 정치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 SNS)

여야는 '뒤늦은 통과'에 일제히 반성문을 썼다. 이날 본회의 통과 순간을 기억하려는 의원들의 SNS '인증'도 이어졌다. 여당 법사위 간사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이 '찬성' 표결을 인증한 사진을 올렸다. 박 의원은 페이스북에 "아버님, 많이 늦었습니다. 특검이 철저한 수사로 고 이예람 중사와 유족분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를 바랍니다"고 남겼다.

이날 법안제안을 한 전주혜 의원도 SNS에 "본회의장에서 법안 제안설명을 하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작년 6월 10일 국민의힘,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 112명이 특검법을 제출하고도 법 통과까지 10개월이나 걸린 건 만시지탄이지만, 특검 도입으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길 기대합니다"라고 썼다.

본희의가 끝난 뒤 만난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사실 더 진작에 처리됐어야 하는 법인데 늦어져서 매우 죄송하다. 정말 능력 있고 의지가 있는, 제대로 된 특검을 임명해서 진실을 끝까지 파헤칠 수 있도록 기대하고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대로 잘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민주당에서 낸 이중사 특검법 대표발의자다.

정치권은 특검을 환영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도 함께 약속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 특검법 시행과 군 성폭력 문화 뿌리 뽑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양금희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특검을 통해 국방부, 국군본부 내 어떤 은폐와 협박이 있었는지, 누가 사건을 무마하고 회유했는지 한 점 의혹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오늘 통과된 특검법이 고인을 비롯한 수많은 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치의 사과가 되길 바란다"며 "정의당은 특검을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 군 성폭력 근절, 군 인권 보호, 군 사법체계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중사의 부친이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이 중사 추모소 영정 앞에 있다.

한편, '이중사 특검법'은 이 중사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공군 내 성폭력 및 2차 가해, 국방부·공군본부의 은폐·무마·회유 의혹 등을 특검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지난 4일 법사위 상정 불발 이후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박 의장 중재로 이날 본희의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여야 법사위원들은 전날 법원행정처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각각 2명씩 추천하고, 이 중 교섭단체가 2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에 합의, 특검법을 의결했다. 지난해 6월 국회에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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