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잃은 대기성 자금 여전히 풍부해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지만, 시중에 돈은 여전히 남아돌고 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자금이 늘어나면서 향후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가상자산에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하고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IPO)에 '경' 단위 투자금이 몰린 것처럼 '돈 될' 투자처가 나오면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7일 한국은행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넓은 의미의 통화량 지표인 M2(광의통화)의 작년 12월 평잔은 3613조 원으로 전년 동기(3192조 원) 대비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연간으로 봐도 M2 평잔은 2021년 3430조 원으로 전기 대비 11.7% 늘어났다.
M2는 당장 현금으로 바꿀 수 있거나 수표를 발행해 지급할 수 있는 결제성 예금인 협의통화(M1)에 만기 2년 미만의 정기예금 등의 준 결제성 예금을 더한 금액이다.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외 MMF(머니마켓펀드), 2년 미만 정기예금, 적금, 수익증권, CD(양도성예금증서), RP(환매조건부채권), 2년 미만 금융채, 2년 미만 금전신탁 등이 M2에 포함된다.
올해 역시 시중 통화량은 증가하는 추세로 보인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의 총수신 잔액은 1792조8602억 원으로 전월 대비 4조3082억 원 증가했다.
정기적금과 요구불예금은 각각 34조7992억 원, 701조3421억 원을 기록하며 전월 대비 각각 2500억 원, 16조6599억 원씩 상승했다. 같은 기간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은 122조2234억 원으로 7조2516억 원 늘어났다. 단, 정기예금은 665조9317억 원으로, 8452억 원 줄어들었다.
현금보유 성향을 가늠하는 M2 대비 M1 비율 역시 2020년 34.49%에서 2021년 37.36%로 증가했다. 투자 기회가 생길 시 바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 비율은 작년 10월 37.9%에서 12월 37.1%로 다소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 한은이 금리 인상 등을 통해 긴축 신호를 보내고 자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들어서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은행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최근 청년희망적금이 큰 인기를 끈 것처럼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최근에는 고금리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시중에 대기성 자금이 여전히 많은 만큼 수익성이 기대되는 투자처가 나타난다면 다시 한번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예로 올해 1월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은 20조7000억 원으로 전년 4분기 대비 2조 원가량 급감했지만, LG엔솔 상장에는 ‘경’ 단위의 천문학적인 금액이 몰렸던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마땅한 투자처가 없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내외 변동성이 크다 보니 우선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며 "현금 보유 시 금리 인상기에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동시에 저평가된 주식 등 괜찮은 자산이 나오면 바로 베팅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투자자예탁금은 이달 2일 기준 64조3628억 원이다. 지난해 말 67조5307억 원에 비해선 3조 원가량 줄어든 수치이지만,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말 27조3933억 원에 비해선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가상자산 거래대금 역시 작년 하반기 일평균 11조3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0년 일평균 거래대금 9790억 원 대비 10배가 넘게 증가한 수치다.
결국, 돈 될만한 투자처만 찾으면 바로 뭉칫돈이 몰리는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자금이 수익률을 좇아 특정 부문에 쏠릴 경우 부작용도 우려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후 금리 인하를 단행한 한은 역시 당시 '빚투'ㆍ'영끌' 등 가계부채 문제와 주식과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 우려를 들어 수차례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낸 바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자산과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 쏠림 대신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흐름을 유도하는 방안을 꾸준히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