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배복주 “꼬리 달린 유세차 타고 시민 속으로 갑니다”

입력 2022-03-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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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복주 정의당 부대표…종로 출사표
“다양성의 종로, 지워진 사람과 함께 하고파”
“장애인 투쟁, 모든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
“공공임대주택 하나 없는 종로, 주거약자는 살지 말라는 뜻”
“젠더 갈라치기, 비겁한 정치…청년에게 갈등 떠안겨선 안 돼”

▲종로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24일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누군가의 차별이 사라질 때, 그와 닮은 약자들의 문제도 함께 해결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거구는 단연 ‘종로구’다. 오는 9일 대선과 함께 치러질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출사표를 던졌다. 자신을 ‘장애 여성이고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 그는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청소년, 청년 등 우리 사회의 지워진 사람들과 모여서 선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낮은 문턱서 멈춘 휠체어, 그래도 달린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지난달 15일 특수제작한 유세차에 오르며 기뻐하고 있다. 휠체어가 오를 수 있도록 리프트를 설치한 국내 유일 유세차다. 비용절감을 아끼기 위해 안전장치는 최소화했다. 이날 그는 블로그에 유세차에 오른 소감으로 "오늘 유세차 리프트 첫 탑승!! 완전 감동!!"이라며 소감을 남겼다. (사진출처=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블로그)

그의 유세차에는 ‘꼬리’가 달렸다. 휠체어를 타는 후보가 차에 오르기 위해 설치한 간이 리프트다. 그는 세 살 무렵 겪은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이마저도 승객용이 아닌 ‘화물용’이다. 비스듬히 내려온 리프트는 지면까지 맞닿지 못한 채 끊겨버린다. 세탁기와 냉장고와 같이 주로 이삿짐을 싣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안전장치 없는 리프트 위에 올라선 뒤에서야 그는 밝은 표정으로 마이크를 움켜잡고 시민들과 만난다.

배 부대표는 힘들지 않냐는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며 웃었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이동하는 그에게 유세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안전장치까지 잘된 리프트를 설치하려면 2000만~3000만 원 정도가 든다. 간신히 판대기만 내려오는 화물용 리프트를 선택하면서 비용을 절반 이상 아낄 수 있었다. 비장애인이라면 들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 한국 장애인 정치인의 현주소다.

그의 유세활동 일지가 담긴 SNS에는 장애인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고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게 턱 앞에서 고민합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문을 잡은 채 인사를 할지, 선거사무원이 들어가서 대신 명함을 전달해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위축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습니다. 무리해서 유세차에 리프트를 설치한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2월 23일)’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여영국 대표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출처=정의당)

그는 장애인들에게 낮은 문턱은 마치 거대한 장벽과도 같다고 했다. 배 부대표는 “특히 종로는 구도심지라서 강남 같은 신도시에 비하면 장애인 진입로 같은 시설 정비가 잘 안 된 편이다. 낡은 건물은 작은 턱이 많아 발길을 돌리게 된다. 어려움 없이 건물에 들어가서 선거 활동하는 경쟁 후보들만 봐도 사실 부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와 상관없이 장애가 있는 후보들이 선거 운동하는 건 참 힘든 것 같다”며 “이런 작은 문턱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배복주만 느끼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휠체어를 타고 모든 장애인이 느끼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청년 시절부터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한 그는 ‘장애 여성’에 주목해 1998년부터 ‘장애여성공감’을 창립하고 이끌었다. 배 부대표를 만난 24일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잠정 중단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 역시 오랫동안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배 부대표는 “올해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1년을 맞았다”며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철로에 내려간 장애인들은 ‘열차 한 시간 멈춘다고 해서 세상이 흔들리지 않지만, 이동권 없는 우리들은 삶이 멈춘다’며 열차를 멈춰 세웠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이동할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이렇게나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회상했다.

“장애인 문제, 사회적 약자 단면과 같아”
그는 장애인 투쟁의 결과는 ‘모두를 향한다’고 말한다. 배 부대표는 “20년 넘는 투쟁의 결과가 지금 세상을 많이 변하게 했다”며 “일단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생겼는데, 지금 보면 장애인만 이용하지 않는다. 노약자 등 교통약자들이 다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항상 장애인들이 싸워온 결실을 모든 교통약자나 사회적 약자들과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두를 위한 정치’, 시민사회에서 인권 운동을 하던 그가 정치권에 입문한 이유다.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사회적 약자의 단면과도 같다. 그는 ‘장애인 탈시설’을 통해 ‘주거 약자’ 문제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달 18일 그는 종로구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사는 장애 여성들과 만난 단상을 털어놓았다. ‘장애인 자립생활주택’은 정부가 탈시설한 장애인들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총 2년 동안 지역사회 내 일반가정과 비슷한 주거환경을 지원한다는 정책을 담고 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지난달 18일 종로에 위치한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방문했다. 그는 "종로구에는 공공매입주택이 없어 높은 보증금과 월세를 내야한다는게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전했다. (사진출처=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블로그)

그는 “최근에 만난 분들도 내년 5월 임대 만료를 벌써 걱정하고 있었다”며 “LH나 SH와 같은 곳에서 주택을 사들여서 장애인들에게 저렴한 임대를 제공해줘야 하는데, 종로구는 땅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공공 매입 임대가 단 한 채도 없다. 이는 빈곤층, 사회적 약자는 종로구와 같은 도심지에 살지 말라는 신호와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가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가난한 부모님을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고독한 노인을 원해서 외롭게 살아가는 게 아니다. 장애인 탈시설 문제가 아닌 저소득 청년, 여성 1인 가구, 독거 노인 등 주거 약자를 위한 정책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라치고 지워지고…“비겁한 정치는 단호하게”

▲종로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배복주 정의당 후보가 24일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여느 대선에 비해 ‘갈라치기 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2일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에서도 여성 인권은 주요 쟁점으로도 다뤄졌다. 하지만 젠더 분열이나 여성가족부 존폐 공약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다뤄지면서 일·가정 양립, 고용성평등 같은 문제들은 뒷전이 됐다. ‘여성운동가’로도 활동한 배 부대표 역시 최근 정치권 흐름에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또 “비겁한 정치의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내면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 등 수많은 피해자를 곁에서 도왔다. 2020년 2월 정의당에 입당했고, 이듬해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해결도 맡았다. 배 부대표는 “갈라치기로 표를 결집하는 자체가 나쁜 방식”이라며 “혐오와 증오, 분노로 성별 갈라쳐서 한쪽으로 결집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젠더 문제는 성차별 구조의 문제”라며 “사람을 악마화시키고, 일탈한 사람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성폭력, 권력형 성폭력 문제들, 달나라에서 일어나는 얘기가 아니다. 성별에 따른 권력의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내고 이 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해마다 여성의 날에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도 한국은 9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 분담 비율도 여성이 남성의 3배 이상이다.

그는 “구조적으로 수치만 보더라도 남성이 사회의 의사결정 주체로 많이 점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법과 제도로 보완해야 할 게 많지만 결국 우리 사회 문화와도 연결돼 있다”며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사고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된 인식을 바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성평등 정책에 대한 역차별 논란에 대해선 “미투 운동을 포함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제서야 조직화되고 사회에 전해지면서 법과 제도도 바뀌고 있다. 역차별 논란 역시 젠더 인식이 정책 변화 속도를 좇아오지 못하면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치권이 남녀 청년들에게 젠더 문제를 떠안게 해선 안 된다고 거듭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 성별의 역차별로 엮이지 않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할지를 더 집요하게 논의해야 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최소한 이들끼리 싸우게 해놓고 정치인들이 구경하면서 표나 결집하려는, 그런 정치를 하면 안 된다”며 “평범한 시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장애인, 여성인권 운동가 배복주가 한국 정치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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