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으로 세상 읽기] 노동시장에서 펼쳐지는 MBTI 잔혹사

입력 2022-02-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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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MBTI가 어떻게 되세요?”

TV 예능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질문이 흥미나 공감 유도의 수준을 넘어, 삶의 심각하고 진지한 영역으로까지 넘어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동시장이다. 대기업의 지원서에 본인의 MBTI 성격 유형을 기입하는 항목이 생기는가 하면, 어떤 채용 공고에서는 특정 성격 유형은 지원이 불가하다고 명시되어 있기까지 하다. “MBTI는 채용 결정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라는 한 기업의 설명은, 그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기야 관심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지원서나 자기소개서에 적으라 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원자의 MBTI 성격 유형을 물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지원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솔직하게’ MBTI 검사를 받고 그것을 지원서에 ‘솔직하게’ 기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MBTI 검사는 여러 가지 질문에 본인이 직접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자기보고형 성격유형검사의 결과는 ‘자신의 성격 유형’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격’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원자들의 ‘솔직한’ 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지원자 개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격’이다. 기업은 이것을 알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지원자들이 거짓으로 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순진(naive)한 기업은 없을 것이다.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지도 않거니와,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MBTI 검사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어느 정도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기에,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의 진실성은 채용 과정 중에는 증명불가능(unverifiable)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원자들은 전략적인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 해당 기업이 선호하는 유형을 고민하여 답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그 질문을 통하여 기업이 얻게 되는 정보는 ‘지원자가 생각하는, 해당 기업이 선호하는 성격 유형’일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이것을 알고 싶었을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상당히 궁금하다.

대중이 MBTI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솔직하게’ 검사에 임한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격’을 결과표로 받게 되기 때문에, 그 ‘성격에 대한 해석’이 상당히 그럴 듯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검사에 임한 사람은, 그 결과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에 상당히 만족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왔다며 본인의 성격 파악 능력에 우월감을 느끼고, 타인의 유형 맞추기에도 적극 임하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의 그럴 듯함과 그를 통한 만족감이 MBTI 유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고, 이 유행이 노동시장에까지 번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그럴 듯한 성격 유형에 관한 질문을 통하여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아 보인다. 더 나아가 그 질문을 하는 기업의 대표나 인사담당자가 얻고자 하는 정보의 종류, 그 질문의 의도 역시도 상당히 불명확해 보인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그 질문을 받은 지원자들이 ‘정답’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자기소개서의 내용과 면접에서의 행동까지도 그 ‘정답’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지원자들에게 MBTI에 대하여 공부해야 할 부담을 지워 주는 것을 넘어, 특정 성향에 맞추어 행동하고 연기하도록 하여 그들을 표준화하고 틀에 가두어 버리게 한다.

유행하는 성격 검사를 인용하여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결과도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중은 해당 기업을 MBTI에 과몰입한 이들이 주도하는 기업으로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성격심리가 직무 수행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면, 면접관으로 관련 전문가를 더 적극 참여시켜 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지원자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면 차라리 썰렁한 부장개그를 던져주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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