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 사이] ② 미국이 중국을 G2로 만들었다

입력 2022-0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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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위협 안 될 것” 中 WTO 가입 적극 지원…살찌고 허약한 판다를 근육질의 판다로

14억 중국인들의 축제인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은 기업 제재, 법안 발의, 글로벌 반중동맹 구축의 3종 선물세트로 중국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은 동계올림픽 마무리와 3월 초 개최될 양회 일정 준비로 잠시 반격을 멈춘 듯하다. 우선 최대한 올림픽 특수를 챙겨야 하고 하방압력이 커져 가는 중국경제 부양을 위한 각종 국내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직접 대응하며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접근도 숨어 있다. 시간에 쫓기는 미국이 더 조급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결국 중국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중 간 대립의 첫 출발이었던 무역분쟁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트럼프 이후 비등해진 WTO 무용론

지난 1월 27일 세계무역기구(WTO)는 태양광 패널 22개 공산품에 대한 미·중 무역분쟁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이 일부 중국산 제품의 상계관세 부과에 대한 WTO의 판정을 지키지 않아 중국은 매년 미국에서 수입하는 6억4500만 달러 상당의 물품에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제 중국이 WTO 분쟁해결기구(DSB)에 보복관세 부과 승인만 요청하면 중국이 미국한테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추후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심산이다. 중국이 보복관세를 시행할 경우 미국이 다시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36억 달러 규모의 미국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WTO 판결 때에도 중국은 WTO에 보복관세 이행을 통보하지 않았다. 미 무역대표부는 WTO 분쟁기구를 비판하며 WTO 규정과 분쟁조정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 제기된 WTO 무용론이 다시 점화되며 미·중 간 샅바싸움이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

WTO 무용론은 중국의 비시장 경제행위와 교역에 대한 규제가 진행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가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WTO 상소기구 위원 후임 인선을 보이콧하면서 본격화되었고, 그에 따라 WTO 상소기구는 사실상 2019년부터 기능이 거의 정지된 상태다.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WTO 내 중국의 입김도 더욱 강화되었고, 중국은 이런 WTO 다자채널을 적극 활용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전 중국의 WTO 가입을 적극적으로 도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중국을 지금의 G2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G2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저렴한 메이드 인 차이나에 의한 경제성장인데 그 출발점이 중국의 WTO 가입인 것이다.

시장개방 폭 놓고 미·중 줄다리기

중국의 경제성장에는 크게 두 개의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78년 4대 경제특구(선전, 주하이, 산토우, 샤먼)의 대외개방으로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었고, 두 번째는 2001년 11월 10일 WTO 가입이었다. 비록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국 중국도 원했고 미국도 원해서 이루어진 합작품이었다.

사실 중국의 WTO 가입은 매우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중국은 1986년 7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재가입 신청 이후 15년간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 40여 개 국가와 양자회담을 진행했다. 그 중에서 미국과의 협상이 중국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중국의 개방을 더 이끌어내려는 미국과 최대한 개방의 폭을 줄이려는 중국의 치열한 협상이 진행되었다. 또한 중국의 인권 문제와 타이완 이슈 등 정치 현안과 지식재산권 보호,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등 경제 현안도 미·중 간 협상의 중요한 어젠다로 자리 잡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1999년 당시 클린턴의 모험 건 승부수

중국의 WTO 가입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신경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주룽지 전 총리이다. 1999년 3월 주룽지 총리는 WTO 가입을 위해 미국에 더 많은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과의 WTO 가입 협상을 타결하려고 했다. 그의 전략은 중국이 양보하는 대신에 가입 후 시장개방 시간(양허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즉, 중국은 아직 개도국이니 WTO의 개도국 지위로 가입해 미국이 요구하는 관세 및 서비스 영역을 개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999년 9월 장쩌민 국가주석과 클린턴 대통령의 뉴질랜드 정상회담 이후 WTO 가입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클린턴 대통령 입장에서도 모험을 건 승부수였을 것이다.

▲빌 클린턴(오른쪽) 미국 대통령은 1999년 4월 8일 워싱턴을 방문한 주룽지 중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원을 약속했다. 연합뉴스

펜스 “40년 對중국 포용정책은 실패”

당시 미국 내부 여론은 중국의 WTO 가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중국은 결코 체제 및 구조적인 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배했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시장에서 미국기업이 막대한 자본과 강력한 기술경쟁력을 앞세워 실질적인 이윤이 창출될 것이고, 이로 인해 중국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믿었다. 또한 시장경제의 장점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고 향후 미국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살찌고 허약한 판다를 미국이 도와 근육질의 판다로 만들어 준 셈이다.

2018년 10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40년간 미국의 대중국 포용정책은 실패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중국이 세계의 G2로 등장하게 만든 게 바로 미국이라는 의미이다. 지난 40년간 미국의 중국 포용론이 실패했고 또한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이 글로벌 경제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다자채널의 WTO를 불신하는 미국이 중국을 직접 겨냥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상황은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 對中 무역 적자 오히려 더 늘어

2020년 1월 타결한 미·중 간 1단계 무역합의 이행률을 두고 최근 양국 간 대립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2017년 기준 미국 상품과 서비스를 향후 2년간 2000억 달러 더 구매하기로 한 약속을 중국이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는 중국이 합의사항의 약 60% 정도만 이행해 그에 따른 추가관세 검토 및 무역법 301조 발동 가능성도 언급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오히려 매년 더 늘어가는 추세이다. 미국이 더 조급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또 다른 중국 무역규제를 예고하는 것이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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