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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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개를 특별대우하는 게 좀 이상하기는 하다. 영장류라면 모를까 소나 돼지에 비해 개가 사람에 더 가까운 것도 아니고 지능이 더 높지도 않다. 그럼에도 일부 채식주의자를 빼고는 소와 돼지를 잡아먹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개를 먹었던 과거 우리가 더 합리적이었던 것 아닐까.
2000년대 들어 야생동물 가축화에 대한 고고학 발굴 및 유전체학 연구가 이어지면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든 사건이 무려 3만 년 전 일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소와 돼지 같은 주요 가축을 길들인 건 1만 년 전이다. 당시 수렵채취인들이 개를 키운 목적은 고기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사냥 파트너로 삼기 위해서다. 오늘날 수렵채취인 사회를 관찰한 결과 개를 동반한 사냥이 훨씬 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뒤 인류가 농업사회를 이루며 개의 역할이 다양해졌고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주로 반려동물로서 사람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개를 특별대우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
3만 년에 걸쳐 개와 사람이 동고동락하면서 둘의 게놈도 같은 방향으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지으며 탄수화물(녹말) 섭취 비율이 늘어나면서 사람 게놈에서 이를 분해하는 효소인 아밀레이스의 유전자 개수가 늘어났는데, 음식 찌꺼기를 받아먹던 개 역시 아밀레이스 유전자가 늘었다. 참고로 늑대는 육식동물이다.
인류는 늑대를 개로 길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백 가지 품종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개의 생김새와 체형이 제각각이지만 무엇보다도 덩치 차이가 두드러진다. 사람도 피그미족과 북유럽인을 비교하면 덩치가 꽤 차이가 나지만 개에는 비교가 안 된다. 치와와 같은 소형견과 세인트버나드 같은 대형견의 몸무게 차이는 40배에 이른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개 200여 품종의 게놈을 분석해 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 20여 개를 찾아냈지만, 이것들이 어떻게 작용해 이런 큰 차이를 낳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다만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1) 관련 유전자의 변이가 15% 정도로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견 크기인 늑대에서 개가 나왔으므로 소형견은 IGF1 수치를 낮게 만드는 변이가 선택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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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자들은 IGF1 수치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변이를 찾았다. IGF1의 양을 조절하는 IGF1-AS 유전자로 T형과 C형이 있다. 몸무게가 25㎏ 넘는 품종은 주로 T형이고 15㎏ 미만인 품종은 주로 C형이었다. 개의 조상인 늑대 수십 개체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예상대로 거의 T형이었다. 가축화 초기 사냥 파트너였던 개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 개를 반려동물로 삼으면서 작은 개를 선호해 C형이 점점 늘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IGF1-AS 유전자는 T형이 원조일까.
연구자들은 수만~수천 년 전 늑대와 개(발굴한 뼈) 게놈뿐 아니라 여우와 코요테 등 다른 갯과 동물의 게놈도 비교했다. 그 결과 수만 년 전 늑대 역시 C형의 비율은 낮았지만 지금보다는 높았고, 다른 갯과 동물들은 거의 C형이었다. 여우와 재칼, 코요테는 덩치가 작으므로 말이 된다. 결국 갯과 동물의 조상은 C형이었고 약 1000만 년 전 늑대 계열이 분화한 뒤 변이가 일어나 T형이 나왔고 덩치가 점점 큰 쪽으로 진화해 오늘날에는 거의 T형으로 바뀐 것이다.
즉 수백만 년에 걸쳐 C형 우세에서 T형 우세로 바뀐 늑대를 길들인 사람이 불과 수백 년 사이 T형 우세인 대형견에서 C형 우세인 소형견을 만들며 유전자의 원형을 되찾았다. 늑대는 개의 조상이지만 IGF1-AS 유전자만 보면 오히려 개(소형견)가 늑대의 조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