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논란 ‘태종 이방원’, 아무런 문제의식 없었나

입력 2022-01-2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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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21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태종 이방원’ 드라마 동물학대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KBS1TV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촬영 당시 무리해서 낙마 장면을 찍다가 결국 말이 사망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다. KBS는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비판 여론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출연자, 제작진 중 이 같은 가혹한 촬영 방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없다는 것에 시청자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제작진에 책임을 묻고 동물을 촬영할 때 현장에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1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은 낙마 장면 촬영 현장에서 와이어로 말을 강제로 쓰러트리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동물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말은 촬영 일주일 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자유연대, 카라 등 각종 동물권 단체들은 스태프들이 말의 다리를 와이어로 묶어 넘어뜨리는 촬영현장 영상을 공개하며 “(이번에 일어난)참혹한 상황은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니라 세밀하게 계획된 연출이라는 점에서 명백한 동물 학대”라며 규탄했다. 관련 단체들은 21일 연출자 김형일 PD, 제작사 황의경 몬스터유니온 대표 등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KBS 측은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며 사과했으나 비판 목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모양새다. KBS는 22·23일 방송 예정이었던 드라마 13·14회를 결방한 데 이어 29·30일에도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의 장면이 담긴 7회는 KBS 홈페이지를 포함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에서 스트리밍이 중단된 상태다.

▲출처=동물자유연대 인스타그램 캡처

시청자들 또한 KBS시청자권익센터를 통해 드라마 폐지 요구하는 등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영상 촬영 시 준수할 동물복지 가이드라인 만들어달라는 글을 올리며 현재 13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배우 고소영, 김효진, 공효진 등 유명 연예인들도 개인 소셜미디어(SNS) 게시물 등을 통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대선후보들 또한 자신의 SNS를 통해 비판을 가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동물에게 위험한 장면은 사람에게도 안전하지 않다”며 “만약 말 다리에 줄을 묶어 강제로 넘어뜨리는 등의 과도한 관행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개선하고 선진화된 촬영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적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동물은 소품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드라마 촬영에서 동물이 죽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극의 경우 말을 타는 촬영을 많이 하는데, 말에 타는 출연진은 물론 말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상황이 종종 일어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KBS 대하사극 ‘대왕의 꿈’에 출연했던 최수종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땅이 얼어있는 겨울에 말을 타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쇄골뼈, 손뼈 등이 산산조각이 났던 경험을 소개하며 당시 탔던 말은 죽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KBS 사극 ‘용의 눈물’에서는 출연자가 등에 들쳐메고 있던 노루를 집어 던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시 노루는 마취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MBC ‘선을 넘는 녀석들’ 방송화면

이처럼 드라마 촬영 도중 발생하는 동물 학대 논란이 계속 제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촬영 현장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게 동물권단체들의 주장이다. 동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가이드라인 설정과 함께 위험한 촬영 대신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예산 문제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물권 보호단체 카라가 2020년 영화·방송계 관계자 1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동물 출연 대신 CG를 고려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8%가 ‘없다’고 답했다.

KBS 역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가장 큰 문제는 말이 죽고 난 이후에야 이 같은 가혹 행위가 세상에 알려진 점이다. 만약 해당 장면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또 문제 의식을 갖지 않고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라는 “KBS는 이번 일을 ‘안타까운 일’ 혹은 ‘불행한 일’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 참혹한 상황은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닌, 매우 세밀하게 계획된 연출로 이는 고의에 의한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라면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는 이번 상황을 단순히 ‘안타까운 일’ 수준에서의 사과로 매듭지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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